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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위기에 직면한 현대 민주주의

민주정치의 틀이 심히 훼손돼 가는 것은 범세계적 추세다. 최근 읽은 잡지의 정치를 풍자한 표제 그림이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였다. 이 그림 한장으로 기사 전체가 명료하게 요약된다.

헝가리의 예를 보자. 집권당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의회의 거수기들을 동원해 입맛에 맞게 입법해 감독기관들을 장악했다.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할 감찰기능은 없어지고, 기업활동에도 콩놔라 팥놔라 간섭하며, 사법기관도 쥐락펴락한다. 언론도 확실한 시녀의 신세가 됐고 선거 방식도 투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것들이 법치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회를 통한 입법조치로 이 모든 월권행위를 보장받는다. 이것은 분명 일당독재이건만 권력자들은 민주주의를 잘하고 있다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겉은 양가죽을 쓰고 있지만 속으로는 늑대가 되어 민주적 가치들을 말살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헝가리뿐일까. 소비에트에 저항하며 이뤄냈던 폴란드의 민주항쟁도 빛이 바랬다. 동유럽 여러 나라들의 정치적 상황도 비슷하다.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국가들도,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일부 국가에서는 대놓고 협박과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한다. 시민의식이 조금 있는 국가에서는 포퓰리스트들의 무분별한 선심공약에 따른 각종 재정지출로 나라의 금고가 비어가고 있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음 선거를 이기고 싶어한다. 정치인들이 제공하는 각종 장려금, 보조금, 유공자 보상금도 내용이 투명하지 않는 한, 표를 사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거죽으로는 민주절차를 따른다 하면서 사실은 민주사회를 내부에서 붕괴시켜 일당독재의 길로 내닫고 있다. 정치적 야망과 교활함으로 무장된 집단의 탐욕으로 사회의 가치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를 수백년 실천해 온 선진국들도 후발국가와 비교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최고 권력자가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할 연방은행 총재에게 압력을 가하고 소셜미디어에 사소한 일까지 의견을 달아 국론 분열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유로연합 탈퇴를 놓고 중요사항의 국정 토론이 필요할 때에 영국 수상은 여왕을 알현하고 나서는 의회의 기능을 여러 주동안 잠정 정지시켰다.

포퓰리스트들은 사람들의 불평불만에 편승해 분노와 분열을 확대 재생산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욕구를 채워나간다. 부유한 권력자들인 이들은 정의의 사도를 자칭하면서 기득권층을 몰아내자고 외친다. 정치적 반대파들을 완전히 분쇄해 재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일당독재를 의미하고 민주주의와 결별하는 수순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시민의식이 확고하고 사회 구성요소들의 역량과 다양성 등으로 능히 자유의 가치를 지켜낼 수가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나라들은 포퓰리스트들의 선동과 분열된 진영논리에 쉽게 휩쓸리게 된다. 지금의 한국 상황도 이와 비슷한데,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기를 염원해 본다.


김선홍 / 전 중앙은행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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