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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195>북미 식민사 42

#월터 롤리 경의 죽음

포카 혼타스가 영국에 도착했을 무렵 월터 롤리 경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소식에 접했다. 13년의 기나긴 투옥 생활 끝에 석방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롤리 경은 감옥에 있는 동안 국왕에게 편지를 보내 만약 석방된다면 남미의 기아나에 있다는 금의 본향 '엘 도라도'를 찾는 여행을 떠날 것이라 했다. 그동안 롤리 경의 석방 요청은 번번히 거절되었었으나 왕실 재정이 최악의 상황에 처하자 국왕이 마음을 바꾸어 롤리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북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에 열정을 불태우며 매진했던 인물은 월터 롤리 경이었다. 30여년 전인 1584년 원대한 희망을 품고 식민지 건설 사업을 시작했고 당시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던 그 꿈이 이제 결실을 맺으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식민지 건설에 거의 전재산을 투자했고 당시 탐험에 최고의 인재들을 찾아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결론적으로 1585년부터 착수한 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의 선구자는 월터 롤리 경이었고 이주민 정착지인 제임스타운을 살린 것은 포카 혼타스였으며 정착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것은 담배 덕분이었다.



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에는 1차 이주자였던 로어노크 이주민 100여 명이 사라지고 2차 이주지인 제임스타운의 이주민 수백 명이 기아로 죽는 등 혹독한 대가가 뒤따랐으나 식민 시도 30년 만에 버지니아는 환희의 땅으로 변모했다.

마지막으로 월터 롤리의 남미 기아나 탐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그가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형대였다. 똑똑한 롤리가 기아나에서 별 볼일이 없었으면 넓은 신대륙 아무데로나 도망가지 왜 영국으로 되돌아왔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상을 떠난 지 15년 후인 1618년6월 사형이 집행됐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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