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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아날로그 시절의 좋은 습관

워싱턴DC에서 집에 돌아와 쌓인 우편물을 정리하다가 크리스마스 카드에 동봉된 연말 편지를 읽으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지난 30여년 이어온 원근에 사는 지인들과 연말에 그해 일어난 가족 소식과 사진을 주고 받는 아날로그 시절의 습관에는 훈훈한 사랑이 있다. 더구나 거리가 멀어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서로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가 중요한 인연의 고리를 이어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어른들이 노인이 되는 변화를 본다. 무엇보다 우정을 다지고 솔직히 서로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린다.

인터넷이 나의 생활의 중심이 되어서 2016년 연말에 간략하게 이메일로 인사를 전했더니 작년 연초에 몇 지인이 궁금하다며 연락해왔다. 그리고 어쩌다 친구들과 만났을 적에 우리도 이제는 아날로그 버릇을 떠나 디지털 세상을 살자고 했더니 몇 사람이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좋은 버릇을 왜 버려?”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잡은 관념이 무섭다. 프린트된 신문을 계속 구독하는 이유다. 우리가 지인들의 근황을 궁금해 하듯이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음에 행복해서 작년에 다시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고 편지를 썼다.

원근에서 지인들이 보낸 소식은 안정된 변화다. 우리는 주고받는 뉴스로 세월의 흐름을 함께 산다. 40년 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하우스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는 지인들은 작년 여름 40주년 기념일에 프랑크푸르트의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다시 오페라를 봤는데 이번 작품도 첫 작품처럼 비극으로 끝나는 오페라였다며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라 어쩌면 당연하다” 담담하게 인생철학을 적었다. 4개월 동안 럭셔리 세계일주 크루즈를 했던 부부는 노년기를 주제로 희극적인 장편소설을 썼고 작년에 특히 건강문제로 병원을 많이 들락였던 부부는 오히려 그 많은 고통스런 순간들이 축복이었다며 살아있음을 감사했다.

작년 11월 일본 여행중에 후지산이 보이는 시즈오카에서 반가이 해후한 부부는 재미난 소식을 보냈다. 미쓰비시 회사의 주재원 가족으로 20년 전 앨라배마에 살았던 그들은 우리 부부와 나이와 취향이 비슷하다. 그때 남자들은 주말마다 함께 골프를 쳤고 가족들은 디너클럽에서 자주 만났다. 그들은 대학생이던 딸 둘이 미국 남자와 연애할까 두려워 일본에 두고 왔었다. 영어가 힘든데 미국 사위 얻으면 평생 영어를 해야하니 싫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 묘해서 그들의 두 딸이 도쿄에서 만난 외국인들과 연애했다. 엉겁결에 캐나다 사위와 호주 사위를 맞아들이고 이어서 줄줄이 태어난 손주들과 그들은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를 사용한다. 작년에 만났을 적에 아이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영어 교습을 받는다” 해서 함께 많이 웃었다. 그 부부가 연말에 찾아온 손주들과 등산하며 찍은 사진을 보냈다. 할아버지 할머니 키만큼 쑥쑥 자란 아이들에 둘러싸인 부부의 표정은 만족과 행복이다.



한국에 사는 옛친구는 카톡을 보냈다. “너만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실물카드를 보내는 유일한 사람”에 보태서 “이젠 컴을 못하는게 문맹”했다. 사실 변화는 한국에만 아니라 이곳에도 있다. 해마다 장장 5장의 편지에 깨알같이 별별 소식을 다 전해주던 지인이 이번에는 단 한 장으로 줄였다. 그리고 이메일에 편지를 첨부해서 보낸 지인은 “프린트한 편지보다 절대로 의미가 적은 것이 아님을 공고한다” 토를 달았다. 우리가 살며 사귄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필요에 따라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아날로그 시절의 정서를 가졌다. 예전에 아무리 날라 다녔어도 이제는 급변하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빨리빨리 문화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한다.

요즈음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그리운 시대다. 전자기기로 얼굴없는 상대와 콩튀기듯 나누는 교류는 반짝이는 상큼함은 줘도 깊숙하고 그윽한 맛은 주지 않는다. 직접 마주보고 상대의 눈빛과 얼굴 표정, 심지어 바디 랭귀지까지 모든 것이 어울린 분위기속에서는 서로의 가슴을 읽고 존재를 감사한다. 인간미를 나눈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남편조차 일주일에 여러번 친구들을 만나 수다판을 벌리는 것을 좋아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이 중요한데 하물며 많은 세월 갈고 닦은 정이 돈독한 지인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연말마다 서로의 근황을 알리고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기회를 갖는 일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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