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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제 칼럼] 해 아래 한가지 불행한 일 ‘누리지 못함’

애틀랜타 연합장로교회 행정목사

애틀랜타에서 경험하기 힘든 강추위가 지나가고, 갑자기 날씨가 풀린 지난 주말 가까운 스와니 공원을 찾았다. 정말 오랜만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부부, 노부부, 뛰어가는 조깅족, 대부분 가족단위다. 잘 조성된 나무바닥 산책로 옆으로 그림같은 호수에 먹이를 찾아다니는 거위들, 원시림처럼 하늘로 쭉쭉 뻗어있는 소나무, 참나무와 잡목들,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다양한 인종의 이웃 주민들. 아직 모든게 회색이지만 봄이 되면 온통 연두빛으로 덮이고, 꽃이 만발하게 될 모습을 그려보니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스와니 북쪽 트레일은 남쪽 트레일과는 전혀 다른 느낌. 그간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니, 알 수도 없었고, 지인들에게 소개도 못했다. 이처럼 풍성한 주변환경을 평소에 누리지 않고 소외시키고 있었다. 성경에는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살았다는 솔로몬 왕이 말년에 남긴 자서전적인 고백록이 있다. 바로 ‘전도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허무주의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생의 무상함과 무의미함, 헛됨을 선포하고 있지만, 실은 인간의 깊은 실존적인 공허함에 대한 분석서이다. 성경에 포함된 책답게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알고 만나 경외하는 것이라고 결론짓지만, 인생을 직시할 수 있는 수많은 솔직한 고백이 담겨져 있다.

이 가운데 전도서 6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이 인생을 회고하면서 해 아래 즉, 이 세상에서 목격한 것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한가지 불행한 것’으로 지목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받았지만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전도서는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고 말한다.

우리 이민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숨가프게 바쁘고 악착같이 살아간다. 가게와 직장일도 집안 살림도, 심지어 교회에서 사역도 숨가프게 바쁘고 빡빡하게 치열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사는 커뮤니티와 미국의 환경을 보고 경험하고 누릴 시간이 없다. 전도서는 이어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더 극단적인 예를 들고 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누리지 못하면 아예 없는 것, 결핍이 더 좋다는 것이다. 누림은 영어로는 ‘enjoy’ 즉, ‘즐기다’라는 뜻으로 ‘기쁨을 충만히 한다’는 의미다. 이 ‘엔조이’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다. 하나님을 기뻐하는(enjoy) 것이 기독교인의 최고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상의 삶에 마음이 너무 분주하면 기뻐할 수가 없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누림의 기쁨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강과 여유가 있어야 주변이 보이고, 누릴 수 있다. 본인이 누려봐야 가치에 대해 경험하고 눈을 뜰 수 있다. 직접 가치를 경험하고 알고 난 뒤에야 선의가 보태어질 때 다른 사람에게 나눔까지 나아갈 수 있다.

기독교의 기본 논리는 자기도 경험하지 않고 믿지도 않는 것을 이익을 위해 팔아야 하는 약장수 논리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증거자’의 논리에서만 생존한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설교자(목사)와 기독교인은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나를 따라하라’는 사람이다. 그런 기독교인이 진짜다. 주어진 것을 스스로도 누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겠는가. 그것은 위선이다. 그런 곳에 함께하는 것은 시간낭비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불행한 일이다. 문제는 그런 시간낭비와 불행이 이 시대에 만연한 풍조가 됐다는 것이다.

지금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볼 것은 가정-일터-(교회) 3개의 굴레의 분주함에 휩쓸려서 누리고 경험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야 할 것을 자칫 스스로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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