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혜경] 노을을 바라보다

자연과 함께 하는 휴식은 언제나 평화롭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짬을 내어 쉴 기회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 출근 전에 가까운 공원 숲길을 걷는다든지, 들고 나간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점심을 요기 하면서 오리 떼 발길질에 무늬 짓는 호수를 바라본다든지, 퇴근길 어딘 가에서 우연히 노을을 만나면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는 정도지만 그래도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한결 정갈해지는 느낌이다.

자연 속에서 혼자서 시간 보내는 것을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혹은 ‘고독을 즐기는 일’이라고 나름 멋지게 표현하지만, 사색은커녕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득과 실을 따져 보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서 긴장을 이완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참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행위의 반복처럼 보여도 한동안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두 달 전 즈음 매트리스를 사려고 마리에타 지역에 있는 대형매장에 갔었다. 광활한 파킹랏 덕분에 보기엔 평지 같아도 야트막한 산 중턱을 깎아낸 곳이라 꽤 높은 곳이었다. 코끝이 얼얼할 정도로 찬바람이 불었던 날이어서 물건을 차에 옮겨 싣고는 후다닥 운전석에 올라타고 보니 맞은 편 하늘에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세상에나! 내 시선이 닿은 하늘은 다른 세상이었다. 노을빛에 물든 구름과 석양을 등에 업은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광경, 그 절묘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었으리.

꼭 한 번 다시 가봐야지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가, 지난주에 일부러 짬을 내어 그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노을이 내리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었기에 잠시 주위를 살펴보려 차에서 내렸다. 넓은 파킹랏 한구석에서 여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으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잠시, 그곳에는 이미 차를 대어놓고 노을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들 모습을 살펴보다가 저들도 나처럼 정신적 허영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서로 안면도 없고 친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로 노을을 기다리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니.

적당한 나무숲과 어우러진 빌딩들 뒤편에서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며 모습을 드러낸 노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색색 가지 빛깔의 빨래들을 휘날리는 듯 주위를 물들이는 빛의 강렬함에 생의 만족감이 마음 한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노을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노을을 바라보면서 내게 남은 생애도 저녁노을 같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물까지 아름답게 물들이는 노을. 사라지는 순간까지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노을. 그것이 진정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이 아닐는지.

그래서 고인이 되신 박완서 선생도 그의 수필집에다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을 쓰셨을까.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인간사의 덧없음과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아아, 그러나 너무도 지엄한 분부, 그리하여 알아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내어 왁자지껄한 잡담과 음식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 쇼핑이나 여행으로 풍족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 부러운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편편하지 못한 내 삶을 탓할 필요가 없겠다. 십 분만 달리면 온몸 구석구석을 행복의 포만감으로 채울 수 있는 곳이 내게도 생겼으니.

누군가 지금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오늘 해 질 녘 마리에타 배럿 파크웨이(Barrett Pkwy)에 코스코 매장이 있는 언덕배기로 차를 몰고 나가 보시길 바란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