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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텍사스 건드리지 마!

미국은 주마다 제 나름대로 별명이 있다. 조지아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복숭아가 유명해서 ‘복숭아 주(Peach State)’라고 한다. 이런 별명은 홍보 목적으로 주 정부가 발행하는 차량 번호판에 표시하기도 한다. 며칠 전 올해 조지아 복숭아 작황이 좋지 않다는 인터넷 기사가 있었다. 주를 대표하는 과일이니 조지아 주민들이 관심을 둘 일이다.

1969년 내가 미국에 처음 와서 시카고 오헤어 비행장에 나를 픽업하러 나온 미국인 친구의 올즈모빌 번호판 ‘Illinois(일리노이)’ 바로 위에 ‘Land of Lincoln (링컨의 땅 )’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링컨이 켄터키 출신으로 알고 있던 나는 “링컨이 켄터키에서 태어나지 않았나”라고 그 친구에게 물었다. 링컨의 고향이 일리노이주라는 말 같아서 조금 헷갈렸다.

링컨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과 정치 활동을 한 곳이 일리노이고, 일리노이주 하원과 연방의회에서 일리노이주를 대표했고, 일리노이에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그는 일리노이 사람이라는 게 그 친구의 설명이었다. 그때까지 본적, 출생지를 놓고 출신 지역을 따지는 한국 관습에 젖어 있던 내게는 다소 의아하고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세기 가까이 된 지금 돌이켜 보니 미국에 첫발을 딛는 나에게 실용주의로 대변되는 미국 문화의 일면을 애초에 일깨워 준 적절한 에피소드가 아니었던가 싶다. 미국 역사상 제일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링컨이 일리노이주 출신임을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다. 링컨의 묘지가 있는 곳도 일리노이 주도 스프링필드이니 ‘링컨이 묻힌 땅’을 ‘링컨의 땅’이라고 해도 크게 억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Land of Lincoln’은 일리노이주의 비공식 슬로건이고 일리노이주의 공식 별칭은 ‘초원 주(Prairie State)’라고 한다.



그러니까 별명도 슬로건도 공식-비공식이 있고 공식이 되려면 주 정부의 정식 입법절차를 거쳐야 한다. 나라마다 ‘나라 꽃’이 있는 것처럼 주마다 주 꽃이 있고 이것도 주 정부의 승인을 거처 이루어진다. 꽃만이 아니라 주를 대표하는 새, 물고기, 나무, 과일 심지어 곤충 등 모두 주법으로 지정한다. 재미있는 나라다.

50개 주의 별명이나 슬로건도 각양각색으로 다양하지만, 더러는 좀 유별난 것도 있어서 종종 이야깃거리가 된다. 보통 일상 대화 중에 자기가 사는 주를 밝히는 때가 있다. 미주리주에 살면 ‘I am from Missouri(나는 미주리 사람이다)’라고 하게 되는 게 보통인데 이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I am from Missouri’는 ‘못 믿겠다’, ‘증거를 대라’라는 의미가 있다. 미주리 주민들은 의심이 많아 근거 없는 주장은 믿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다. 미주리주 자동차 번호판에 ‘Show-Me State’라는 슬로건이 찍혀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show me’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소리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아칸소주에서 살 때 댈러스에 사는 아들 보러 텍사스에 자주 갔다. 아칸소와 텍사스주 경계에 두 주의 이름을 반반씩 딴 텍사캐나(Texarkana)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다. 주 경계선이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데 아칸소를 떠나 텍사스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Don’t Mess With Texas’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텍사스 도로에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이 표지판이 텍사스 고속도로 주변 곳곳에 설치된 후 도로에 버리는 쓰레기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텍사스 주민 중에 ‘Don’t mess with Texas!’ 하며 으스대는 풍조가 생겼다. ‘mess’는 어지럽히거나 더럽힌다는 뜻 말고 남의 일에 개입하거나 간섭한다는 의미도 있어서 ‘Don’t Mess With Texas’ 는 ‘텍사스 건드리지 마’ 혹은 ‘텍사스에 까불지 마’라는 말도 된다. 원래 텍사스 고속도로에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경고가 이제는 텍사스 토박이들이 거드름 피우는 말로 탈바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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