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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미국에 사는 즐거움

모처럼 얻은 휴일 하루를 대학 풋볼 경기에 가서 보냈다. 아들이 표를 끊어준 경기장 좌석은 그동안 앉아보지 못한 좋은 위치였다. 필드로부터 두번째 줄 좌석이어서 그라운드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수들의 표정은 물론 거친 숨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고, 수 십 명의 사진기자들이 눈앞에서 바삐 오가는 모습은 생동감이 넘쳤다. 경기 진행 보조와 구장 관리를 맡은 이들이 그라운드 주변을 빈틈없이 살피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앉은 위치나 방향에 따라 모든 것이 이렇게 달리 보이는구나, 새삼 확인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고 이윤기 선생은 자신의 작품 ‘숨은 그림 찾기-직선과 곡선’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직선이라고 여기는 것이 과연 직선일까. 혹시 큰 곡선의 한 부분을 대롱 시각으로 보고는 직선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4쿼터 막판 한 선수가 사실상 경기를 마무리하는 인터셉션을 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15초 가량 축하 세러머니를 펼쳤다.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프로 풋볼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5야드 패널티를 받았다. 아직은 대학생, 아마추어 선수인만큼 최선을 다하고 겸손할 줄 아는 것이 승패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인 듯 싶었다.

미 프로풋볼(NFL) 경기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는 특별 경기 한 경기씩을 제외하면 모두 일요일에 열린다. 토요일에는 NFL 경기가 없다. 토요일은 온전히 대학 풋볼의 날이다. NFL과 전미대학스포츠협회(NCAA)가 서로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한, 오랜 관행이다. 상호 존중과 배려다. 중계권과 광고 수익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도 서로에 이익이 되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 또는 이해 없이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피해 망상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넓고 넓은 세상을 대롱 눈으로 바라보다 종국엔 공멸을 자초할 수 있다.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일리노이 대평원에 사는 우리는 위스콘신 구릉만 봐도 감탄하지만, 록키 산맥 인근에 사는 이들은 위스콘신조차 편평하게 느껴질 것이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가짜 뉴스' 논란도 결국 각자의 대롱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서 비롯된다. 이제는 경계마저 모호해진 보수와 진보는, 각각 자신만 옳고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조건 상대를 매도하기 일쑤다. 관세와 무역 전쟁, 총기 규제나 이민 정책 논란도 각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게 당연한 데도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조율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앞뒤를 자르고 교묘하게 짜깁기 해 억지 주장을 만들어내고, 악감정을 부추기는 데만 여념이 없다.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부메랑이 되고 자신이 놓은 올무에 걸려들 수도 있다.

풋볼 경기가 끝날 즈음, 친숙한 목소리의 지역 경찰관이 장내 방송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안전 운행"을 당부하면서 "한 순간의 실수가 악몽을 자초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자, 학생 관중석에서 과장된 비명이 쏟아졌고 이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풋볼 게임 데이는 모처럼 누린 축제 한마당이었고, 상호 존중과 배려, 공존과 상생의 의미를 되돌아본 현장이었다. 미국에 사는 즐거움의 하나다.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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