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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나무

최근에 몇분의 지인이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셨다. 슬픔을 당한 가족의 아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만은, 바로 얼마 전까지 가까이에서 친분을 가졌던 지인들이었기에 더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다가올 죽음이라는 큰 과제 앞에서, 우리에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이 될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유의 시간을 보낸 날들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 해 봄, 선산에 있는 아버지의 묘를 이장해 대전에서 좀 떨어진 문이라는 가족묘지로 옮겨놓았다. 봉분을 열고 인부들을 물린 후 흐트러진 아버지의 뼈를 추리고 알코홀로 뼈 마디 마디를 닦아내면서 우리의 호흡이 코 끝에서 멎을 때 살과 뼈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거역할 수 없었다. 죽음은 나와 무관함인 양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하루하루 그 죽음이라는 명제 앞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은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숨을 거두고 더 이상 피가 돌지 않고 멎게 되면 천천히 우리의 살은 돌덩이같이 굳어져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그날이었다. 눈을 감고 누워계신 어머니의 얼굴은 화색이 돌고, 평화롭고, 무척이나 고왔다. 꼭 잠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손을 뻗어 마지막 이 땅에서의 인사를 드리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더 이상 얼굴을 만질 수 없을 만큼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땅에 태어나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결국 자족이라는 단어에 이르러 불편했던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태도에 있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환경, 조건들은 나를 나 되게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오히려 나를 일으키는 시간들로 받아드리는 순간 아픔은 아픔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오히려 희망의 단초가 되고 행복으로의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용기, 그 죽음조차도 우리의 관계를 흐트리지 않고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게 해, 떠난 후에도 보낼 수 없는 그대의 삶을 기억해내며, 슬픔과 함께 찿아드는 절망을 그리움으로 견디어내게 되는 것이다.

모두 벌거벗은 몸으로 한겨울 눈보라와 살을 에는 바람을 견뎌내며, 산을 지키고 들판을 보듬는 나무들처럼, 하루가 저물어가는 같은 시간, 그대들의 이름을 부르며, 두 손을 하늘로 뻗고, 떠났지만 보낼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날. 서쪽하늘 짙은 노을이 번져 그대들의 얼굴이 떠올라 사무치게 그리운 날.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름 들이여, 당신은 진정 아름답게 이 땅을 살다 홀연히 그리움을 남기고 흙으로 돌아 갔지만 영혼은 함께 같은 곳을 향하여 머리를 들어, 우리의 가슴에 남아 지는 해 노을을 바라보리라. 영원한 나라 그 소망으로 나도 깊어가는 계절 속에, 깊어지는 나의 하루를 조용히 내려 놓으리라.

겨울나무 / 신호철

떠난 후에도
그대 떠날 수 없습니다
잎사귀 한 잎 찬바람에 날리고
차가운 머리 속 맴돌다
다시 밀려드는 그대 위해
창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노을 지고 밤 푸석히 내린
머리맡 헝클어진 어둠의 조각
그대는 동토에 묻은 몸짓입니다

떠난 후에도
그대 떠날 수 없습니다
계절 바뀔 때마다
그대 옷 바꾸어 걸면서
저 언덕 너머 희끗 날리는
그대 맞으러 길 떠납니다
저 들녘 깊은 숨소리
슬픔과 기쁨 어우러진 후
그대는 찾아드는 그리움입니다

떠난 후에도
그대 떠날 수 없습니다
하루가 지는 같은 시간 그대를 만나
함께 바라 보는 세상
밟히는 돌맹이 보석이 되고
흔들리는 잎사귀 순백 드레스가 되는
아아... 떠난 후에야 알아차리는
빈들에 벌거벗은 몸
팔을 들어 직립으로 선 그대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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