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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즈음, 바둑에 흥미를 느끼고 몰입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2급 실력의 친구가 18급 초보인 나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었다. 흑색, 백색의 사기돌도 신기했고, 흰 돌안에 둘러쌓인 검은 돌을 집어내고 집을 넓혀가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더 흥미를 갖게 된 이유는 복기 과정을 보여주는 친구의 빠른 손놀림 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나는 스스로 잘못된 내 선택을 시인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번에는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말아야지 다짐 하곤 했다.

바둑의 복기처럼 인생의 복기가 아프게 마음을 누를 때가 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잘못된 나의 선택이 가져다 준 결과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 회한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 다른 방향으로 내 삶을 옮기었다면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상황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후회도 해본다.

성경에 "탕자의 비유" 혹 "아버지의 집"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탕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많은 성경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아버지의 집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아버지의 집엔 없는 것이 없이 풍족하였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사정해 자기 몫을 챙겨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그 삶은 평탄하지 않았고,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우리에 거하며, 그들이 먹는 주염나무 열매로 허기진 배를 가까스로 채우고 있었다. 그는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 했다.



그러나 염치없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접곤 하였다. 어느날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자신을 받아주기를 바라며 아버지 앞에 엎드렸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에게 비단옷을 지어 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온 동네 사람들을 모아 큰 잔치를 베풀었다. 여기서 큰 아들의 불평과 노여움은 서술하지 않기로 한다.

삶의 복귀를 통해 아버지의 집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깨닫고 나의 걸음을 돌리는 것. 지금 잘못 선택한 나의 길에서 떠나는 일. 처음 복귀의 시작은 미미하지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화의 조짐이 없지만, 묵묵히 그 길로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바둑도 인생도 지나버린 곳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그 길을 우린 이미 걸었고 지나쳐 왔습니다.

그 잘못된 선택을 알고 난 후, 또 다시 그 길을 걸을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그리고 그 걸음의 끝엔 희망과 행복이 보입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습니다. 무채색을 극복한 싱그러운 봄날 아침 우리의 걸음이 무겁고 암울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창 너머로 호수가 보이고 호수 위엔 편안한 봄비로 옅은 파장이 일고, 청둥오리 두마리가 물살을 가르며 봄의 소식을 물고 미끄러지듯 다가옵니다.

꿈에라도 잊지 못하는 내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대를 닮아가는 언덕 위엔 쓰러졌다가도 일어서는 들풀이 아침 일찍 문 앞에 반가운 연둣빛으로 서 있습니다. (시카고 문인회장)

아버지 집 / 신호철

당신보다 크지 않으니
난 그대 안에 있으렵니다
그 안이 편안한 내 집 같아서
멀리 갔다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나 홀로 걷는 길이지만
난 그대 그리워 손을 듭니다
살아야 할 시간
걸어온 길보다 짧아
그 시간만큼 만
그대를 알아야 하기에
나의 자리 떠나지 않으렵니다
내게 필요한 것 없더라도
주신 것으로 자족하리니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날 빚으시는 그대의 손
멀리 보이는 저 불빛
가까워질수록 가슴 뛰는
날 기다리시는 아버지 집입니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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