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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시카고, 시카고 사람들] 오헤어 입국심사대 트라우마

많은 사람들은 ‘시카고’ 하면 그룹 시카고의 감미로운 노래와 걸맞는 저마다의 낭만적인 추억을 떠올릴 테지만 내겐 일종의 작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곳이다.

2000년 7월이니 벌써 20년 가까이 돼 가는 오래 전의 일이다. 스포츠 기자인 나는 당시 시카고 훕스 체육관에서 열린 KBL(Korean Basketball League)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취재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오헤어 공항에 닿았다. KBL 트라이아웃은 최근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지만, 당시 3년 정도 시카고에서 개최됐었다.

문제는 입국심사에서 발생했다. 심사관은 몇 마디 묻지도 않고 내 여권과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 보더니 스위치 하나를 꾹 눌렀다. 잠시 후엔 허리춤에 권총을 찬 덩치 큰 흑인경찰이 오더니 뒤를 따라 오라는 것이었다. 당황해서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조용히 하고, 선을 따라 걸으라”는 위협적인 말 뿐이었다.

수십명의 KBL 관계자, 취재기자단과 함께 도착한 나는 하는 수 없이 일행에게 짐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청사 한 켠의 작은 사무실에 끌려가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같은 KAL 편으로 도착한 한국인이 두 명 더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한 할머니와 젊은 남성은 내게 도움을 청했지만 내 코가 석자였다. 대화도 엄격히 금지됐다.



영문을 몰라 답답해 하고,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지나가던 한 백인 경찰이 “걱정하지 말라”면서 “당신 이름이 마약 범죄자 이름과 비슷해 확인 중”이라고 했다. 범죄자 이름이 내 이름 철자와 같은데 중간에 하이픈(-)이 들어있어 구별 중이라는 것이다.

약 20분 정도의 대기시간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잠시 후 여권을 주며 “나가도 좋다”고 하는 흑인 경찰은 끝까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보니 KBL 홍보 담당자가 가방을 찾고 기다려줘 택시를 이용해 숙소 호텔로 이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해프닝 뒤에 사흘 동안 열린 트라이아웃을 열심히 취재했고, 틈틈이 시카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밤에는 존 핸콕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시카고의 야경을 감상하기도 했고, 시카고 대화재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떠나오던 날 또 하나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동포가 운영하던 호텔이었는데 마지막날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에 짐을 맡기고 아울렛에 쇼핑을 나갔다가 돌아와 찾은 가방에서 당시 100만원 상당의 디지털 카메라가 없어진 것이었다. 몇몇 일행의 짐에서도 값나가는 물건이 사라졌다. 회사 비품을 잃어버린 나는 또 한 번 당황했다. KBL과 호텔이 이 문제는 해결하기로 하고 먼저 떠나왔는데, 호텔 직원이 짐에 손을 댄 사실을 CCTV로 확인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2000년 시카고 출장 이후 나는 미국 입국심사 때면 ‘그 놈의 하이픈’을 의식하며 긴장하곤 했다. 다행히 그 때 이후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았다. 수년 뒤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LPGA 2부 투어를 취재하기 위해 시카고 공항에 내렸을 때도 바짝 긴장했지만 무사히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대에 서면 그 때 기억이 머리 속에서 살아나 나를 괴롭히곤 한다. 최근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입국심사관이 유쾌한 분위기를 유도하며 던진 한 마디, “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나”에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노!”를 외친 것도 아마 오헤어 공항의 잊지 못할 해프닝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30년 전 첫 회사 입사 동기가 터전을 잡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시카고. 언젠가 꼭 다시 방문해 존 핸콕 타워에도 올라가고 친구를 만나 반갑게 회포를 풀고 싶은 곳이다. [전 한국체육기자연맹 회장, 경향신문 스포츠부 선임기자]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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