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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만 있고 네가 없다면

1978년 봄.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 나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도착한 시카고의 거리엔 연분홍의 사과꽃, 진홍의 꽃들을 잔뜩 머리에 인 꽃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조금 열려진 차창 안으로 향긋한 꽃내음이 스미었고, 들엔 초록의 향연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그 다음해 결혼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후로 꼭 40년의 시간이 살같이 흘러갔다. 먹먹하게, 그리웁게, 보고프게, 아프게, 그렇게 내게서 멀리 달아나 버렸다.

나는 오늘 아침 내가 살아왔던 시카고가 아닌 대전 복합터미날 근처 Na Lee's Hotel 5층 창문을 통해 대전의 시가를 바라보고 있다. 고향이지만 생소한, 어느 한구석 내 눈에 익지 않은 거리. 나의 심장은 이 거리의 다른 공기를 들이마시며, 익숙치 않은 거리를 걸으며, 내 눈은 무의식적으로 풍경을 찍어가고 있다.

우린 어디로부터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제 저녁 늦게만 해도 우리 일행은 역 근처 작은 국밥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꿈에서라도 이식당, 이 의자에 앉아, 매콤한 콩나물국에 생선조림을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집을 내러 비행기를 타고 14시간, 차로 3시간의 긴 여행을 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곳에 왔고 여느 때처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내 잠 들었다.

오늘 대전 문화회관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김완하교수 ‘시와 정신’에서 주관하는 이번 행사에는 시카고 문인협회에서 10명의 문인들이 참석해서 4명의 시인들이 시집을 출간했고 대전대 송기한교수, 부산대 송명희 교수, 전북대 유인실교수 등 많은 시인들이 참석했다. 그 중엔 특별히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반가운 손님, 이곳에서 만나리라고는 꿈 꿔 본 적도 없는 대학동기 공예가 이미령, 뉴욕에서 온 조영주가 참석했다. 반가움에 나이도 잃은 채 기억 속에 멈춘 45년 전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라는 존재가 있으면 너라는 존재도 있어야 한다. 나만 있고 네가 없다면, 너만 있고 내가 없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져 갈 수 없고 끊어져 버린다. 서로의 존재가 있을 때 비로소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다. 오늘 나는 필름이 끊어져 볼 수 없었던 20대 초반 이후의 과거들을 잇고 붙이느라 시간을 당기고 늘리며, 끊어질뻔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내가 없어진 곳에 너희만 있었던 게 아니었고, 너희가 없었던 곳에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공간에 있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첫 시집 "바람에 기대어"도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나만 있고 네가 없으면, 너만 있고 내가 없으면 생각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 색을 칠하고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작은 비석 앞에서 파랗게 올라오는 당신의 손짓을 쓸어 담으며 "내가 여기 있어요"라고 시집의 첫 페이지를 넘기고 싶었다. 안성 조병화 문학관의 전시관을 둘러보며 잊고 있었던 무디고 녹슨 칼 한 자루를 품에서 꺼내보았다. 부끄러운 손을 들어 하얀 도화지에 시와 그림을 그리고 노래할 것이다. 나는 자유할 것이다. 차창 앞으로 시카고에서는 볼 수 없는 수려한 산등성이와 그 뒤로 초록의 숲이 굽은 나의 눈길을 바르게 세워 놓는다.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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