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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외로운 원시림이 되자

오늘은 일찍 작업장을 나왔습니다. 한낮에 걷고 싶었던 Crabtree Nature Place를 목적지로 90번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습니다. 싱그런 바람과 함께 맑게 개인 하늘은 평화롭습니다. 불행히도 입구엔 closed란 싸인과 함께 낮고 긴 도어가 진입로를 막고 있었습니다. 방향을 틀어 10분 거리의 Deer Grove Forest Preserve로 갑니다.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휘어진 길로 사라지고 이어폰을 낀 멋진 옷차림의 한 소녀가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 옆을 스쳐갑니다.

나는 한적한 Walking Trail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하얀 패랭이 꽃들이 듬성듬성 피어있고, 난의 시원히 뻗은 잎사귀 끝으로 한낮의 햇살을 즐기는 푸른등 잠자리의 날개가 반짝입니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펼쳐진 곳, 작은 연못 주변으로 키만큼이나 자란 갈대의 유연한 뉘임은 그 동안 쌓여있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한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곳입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늘 사각형입니다. 뒷뜰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동그라밉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오늘 나는 한껏 자유로운 앵글과, 시야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풍경 속에 또 하나의 풍경으로 서 있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모든 색들을 품고 있는 자연 속에서 화가가 되기도 하고 소리 없이 그 키를 키우는 분주한 생명들 사이에서 스토리텔러가 되기도 합니다. 하늘의 가벼운 무게를 느껴보기도 하고, 편만히 퍼지는 고요의 소리를 들어보려 귀를 기울여 봅니다. 들리지 않던 뻐꾸기 소리도 들리고, 큰 잎사귀에 감춰진 작은 머루도 보입니다. 얼굴을 만지고 가는 바람의 손길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늘엔 넓은 적막이 듬성듬성 흰구름과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모자를 벗고 땀을 닦는데 바람이 시원합니다. 한참동안 뙤약볕을 맞으며 걸어갑니다. 얼굴에 잔주름이 져도, 손등이 거칠어져도 괜찮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다 껴안을 수만 있다면 ... 내 안에 들일 수 있는 작은 방들을 가슴에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나도 돌아가 흙이 될 그 흙 위를 이렇게 사뿐히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합니다. 나는 이 고마운 순간을 어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읍니다. 하늘이 열리고 환한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오는 이곳은 천국입니다. 그리고 반갑게 그리운 이의 얼굴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하늘을 걷고 있습니다.



외로운 원시림이 되자 / 신호철

남쪽으로만 달리던 90번 하이웨이
오늘은 그 반대 북쪽으로 간다
일터가 아닌 수풀 속, 풀내음 코끝 찡한 원시림
길고 짧은 그리고 둥글고 뾰족한
시간의 촉을 무시하고 어우러져 숲을 이룬
불쑥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물이 되어
더운 숨을 토하는 소리, 원시의 북소리

심장을 두드리는 연두의 작은 입자
안개처럼 뿌려지고, 느리게 흐르는 하루
이렇게 깊어가는 숲, 정지된 하늘아래
숲속에 숲으로 남아 난 이제 아프지 않다
자유하지 않은 시간들은 가라
아픔을 딛고 일어서지 않고서야
어찌 자유를 말하겠는가

하루가 깨어나는 시간 앞에 서는
숨겨진 들풀들이여, 새들이여,
어우러진 나무여, 그리고 움직이는 숲이여
더운 숨을 토하는 외로운 원시림이 되자
외로움의 깊이만큼 커지는 행복이 되자
세상이 알 수 없는 자유가 되자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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