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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목사의 이민과 기독교] 대역병의 마을, 아이엄(Eyam)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하는 시카고한인교회 포럼”이 시작되었습니다. 유행병의 시대에 의사도 아니고 정책결정자도 아닌 목회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Covid-19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고, 그 영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견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언제든 병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지혜를 모아야 하는 때라는 긴급성으로 인해 온라인 포럼이 생겨났습니다.

역사적으로 대유행병이 일어났을 때는 기독교인도 위험에 노출되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습니다. 250년경 로마제국 전체에 퍼졌던 전염병은 “시프리안 역병”으로 불리웁니다. 카르타고의 감독 시프리안(200-258)이 이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기독교인이 로마제국 전체 인구의 0.4% 정도였고, 기독교회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 병으로 사망한 것은 꽤나 주목 받는 일이었나 봅니다.

당시 기독교인에게 관심이 모인 이유는 유행병이 기독교인을 피해가거나, 아니면 기독교인이 유행병을 효과적으로 피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는 대역병은 “교육의 시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병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의 삶과 믿음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소망과 사랑을 찾아야 하는 시기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1665년에 영국에 대역병이 발생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림프절 페스트의 일종인 전염병은 약 1년 반 동안 1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그 대부분이 런던의 거주자들이었습니다. 런던의 북쪽에 아이엄(Eyam)이라는 작은 마을에 의류 상인이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주문을 받아 견본을 보냈었는데 다시 돌아온 물건 속에 페스트를 옮기는 벼룩이 따라 온 모양이었습니다. 곧 마을 사람들이 앓기 시작했고 사망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아이엄은 영국성공회 교인들과 청교도들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서로 경쟁했던 성공회 신부 맘퍼슨(William Mompesson)과 청교도 목사 스탠리(Thomas Stanley)는 모든 일에 서로 반대 입장에서 다투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이 마을을 뒤덮었을 때, 두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을에 매우 심각한 위협이 되는 이 병에 함께 뜻을 합쳐 대응할 것을 동의하고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지도자가 내린 협력하여 결정은 마을을 스스로 봉쇄하여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을의 수백명의 생명을 대가로 치를 수도 있는 위험한 대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전염병 때처럼 안전한 곳을 찾아 피신한다면, 곧 영국의 더 넓은 지역에서 수백 명이 아니라 수십 만명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스스로 결정한 셈입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찾는 일이 기독교인들의 대응이라고 여겼습니다.

아이엄은 아직도 작은 마을이고 여전히 “대역병의 마을”로 불리웁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죽음의 숫자 때문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모두 겪는 어려움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의 소망과 용기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대역병의 시대가 한편으로는 병과 싸우는 시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교육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앞에 놓인 일로 바쁘게 달려왔던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함께 협력하는 일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전염병의 시기를 “교육의 시기”로 만들기 위해서.
[사랑 커뮤니티 교회 담임, McCormick 신학교 겸임교수]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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