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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근 문학칼럼: 정치와 문학

문학계에서는 문인들의 정치참여는 늘 논란이 되어왔다. 문학과 정치, 문인과 정치인의 경계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미 현실 정치권에는 문인 출신 정치인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름만 되면 알만한 문인들이 정치에 나가 좋은 이미지를 남겼던 예는 많다. 따라서 정치판은 문인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반대로 문학판이 정치인에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을 알아서일까. 정치인들은 문학을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편이다.

정치란 현실의 모든 이해관계 그리고 다양한 철학과 사상들이 최종적으로 집합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는 문학을 잘 하는 사람이 정치를 했다. 정치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지 각자의 이해관계나 각자의 철학과 사상을 현실에 반영시키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자유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가 공동체적 연대감을 건전하게 발전시켜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철학과 사상 그리고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작금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차라리 문학인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작금의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귀족정치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실업자와 노숙자 문제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인들은 공동책임을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저 무지와 도덕적 해이로 문제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국민들의 고통과 분열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당리당략과 집단이기주의만이 있을 뿐이며, 현재 국민들이 겪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우리 자식들이 겪게 될 경제적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우리도 할 말이 없다. 처음부터 엉터리 정치인들을 뽑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뽑았을 수 있지만 그러나 엉터리 정치인들이 물갈이 되지 않고 계속 다시 국회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국민들은 스스로 그런 권한과 기회가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터리 정치인들을 제때 제때 물갈이하지 못하면서 항상 그들의 무지와 무능을 탓하고만 있다. 그러다 보니 여야를 막론하고 엉터리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원내에서 자기들끼리만의 귀족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 자업자득인 셈이다.



이런 엉터리 정치판을 과감하게 갈아치우기 위해서는, 그래서 국민들에게 적극적 선택이 가능하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다양한 삶과 생활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계층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즉 국민의 삶과 생활을 정치에 그대로 녹여낼 수 있는 ‘생활정치인’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작금의 엉터리 정치인들을 시민사회의 생활정치인으로 과감하게 물갈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인이라고 해서 현실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으며 현실정치에 참여한다고 해서 문인으로서의 명성과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인으로서 문제해결 역량만 검증된다면 얼마든지 생활정치인으로서 또는 전문작가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대중들이 문학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어 승화된 문학작품을 통한 현실개혁에 한계를 느낀다면, 그래서 문인 스스로가 직접 현실정치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그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엉터리 정치판을 물갈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문제는 문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정치인에 의해 휘둘리는 것이다. 정치인이 문학을 선정 수단이나 도구로 활용하고, 순수한 문학인을 오염시키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 시인이든 소설가이든 문인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며 직접 참여를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작품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에도 이념적 선동이나 암시를 통한 프로퍼갠더(propaganda) 방식이 있을 수 있고, 문학적 승화를 통해 시대정신을 표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작가가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는 작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방법론적 선택에 대해 문학적 비판이나 대중적 평가 또는 정치적 평가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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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근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수필가
88년 <동양문학> 수필로 등단 후, <경북신문> ,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과 수필 당선
대한민국 수필학 대한명인(제15-436호)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사편찬위원장
국제PEN클럽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장
한국바다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수상
2016년 대한민국을 이끄는 혁신리더 대상 수상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외 14권
현)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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