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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월드컵이 소환한 러시아 추억

정만진 문학칼럼

이제 내일이면 지구촌을 한 달 동안 뜨겁게 달궜던 세계인의 축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이 막을 내린다. 한국 대표팀은 16강에서 탈락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처음으로 원정 16강을 이뤘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만큼은 아니었지만, FIFA 랭킹 1위이고 지난 월드컵 대회 챔피언이었던 전차군단 독일을 2 대 0으로 완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길거리 응원은 또다시 광화문 광장을 뒤덮었고 치맥의 인기도 높았다. 내가 살고 있는 휴스턴에서도 동포들이 한인회관에 모여 열띤 응원을 펼치며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했다.

축구를 우리나라 국기라고 주장한다면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나는 한국인의 여러 애환을 담고 있는 축구가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로 한국 축구팀은 12명이라는 말이 있다. 그라운드 밖에 1명의 선수가 더 있다는 뜻이다. 그 는 바로 ‘붉은 악마 Red Devils”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Be the Reds’란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 모였던 40만 명의 붉은 악마는 세계인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일찍부터 냉전 시대 ‘철의 장막’의 심장부였던 모스크바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고 싶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그곳은 인구가 500만이 넘는 러시아 제2 도시이다.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 신부의 대표작 ‘탕자의 귀향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을 읽은 후 에르미타주 ‘Hermitage Museum’에 소장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Rembrandt’가 그린 ‘탕자의 귀향’ 진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2015년 6월, 러시아를 여행하기 위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출발하는 특급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1701년부터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건설을 시작한 수도이며 백야의 도시라 불리는 네바강 하구에 있었다. 그곳은 델타지대에 형성된 자연섬과 운하로 인해 생긴 수많은 섬을 연결하는 다리 위에 세워진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칭송 받는 문화 예술의 도시이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예술품 3백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명화들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하고 떠밀려 다닌 기억만 남아있다. 비록 어수선한 가운데 채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서둘러 인증 샷만 찍고 떠나야 했지만,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본 순간 루가 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미술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겨울 궁 광장의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과 수많은 관광객을 뒤로하고, 황금 돔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성 이사크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선 고전주의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성당 건물을 112개의 화강암 기둥으로 받치고 있는 웅장한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는 제단을 대신하는 지성소가 있는데, 그곳에 걸려 있던 화려한 이콘들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 중에서도 부활한 예수님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성화가 유독 나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 전통 건축양식인 황금 돔과 파란색의 양파 돔이 잘 어우러진 ‘그리스도 부활 성당’을 방문했다. 유럽풍의 바로크 형식과 신고전주의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러시아 특유의 매우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9개의 돔을 이고 있는 이 성당은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의 성 바실리 대성당을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나는 로만 가톨릭 신자로 러시아 정교회 성당 두 곳을 둘러보면서 그 화려함과 웅장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스도 부활 성당’ 안에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화들을 천장까지 한참을 올려다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았다.

교외에 있는 여름 궁전도 방문했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밝은 톤의 궁전 건물과 싱그러운 잔디가 깔린 넒은 정원이 있었다. 궁전 앞에는 대폭포라 하여 60여 개의 분수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물을 뿜어내며 벌이는 분수 쇼는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말았다. 시내로 돌아와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유럽의 아기자기한 건물보다는 투박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배인 듯 한 정겨움이 보기 좋았다.

네바강으로 빠져나온 유람선에서 바라본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와 강 양쪽으로 들어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풍광은 정말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특히 스탈린 시대 철의 장막이나 OO7 영화에 나오는 냉혈한 KGB 요원과는 너무나 다른 러시아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서구 유럽 어딘가에 와있는 착각이 들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대표 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1차전인 스웨덴과 2차전인 멕시코 경기 때 보여준 나약한 모습은 아마추어인 내가 보기에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한국은 고비 때마다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내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수비수들이 허둥대며 헌납한 두 번의 PK 반칙은 물론 공격수들의 고질병인 골 결정력 부족 등, 죽기 살기로 뛰던 악착같은 근성과 열정이 부족한 듯하여 아쉬웠다. 하지만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의 가능성에 도전해서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멀티 골을 뽑아낸 것으로 앞서 치뤄진 1, 2차전 패배의 아쉬움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다시 준비해야 할 때다. 작년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 축구에서는 항상 감독이 지나치게 비판 받는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우리의 축구 문화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일본은 되는데, 우리는 왜? 월드컵 16강 희비쌍곡선”과 같은 신문기사 헤드라인의 날카로운 문구들도 되짚어 볼 때다. 그래야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카타르에서 16강 이상의 성적도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새기며 다음을 기대해본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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