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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목사 목회칼럼: 잊혀진 기억, 살아나는 기억

나의 생애 첫 번째 기억은 여섯 살 무렵 아버지 등에 업혀있던 모습이다.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잠이 들었는지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었다. 가파른 골목을 오르는 동안 아버지의 등은 땀에 살짝 젖어 있었다. 하지만, 포근하고 따뜻한 기분 좋은 젖음이었다. 아버지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아버지의 등에 바짝 붙어 있었다. 집에 도착했는데도 그 따스함이 좋아 일부러 자는 척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혹여라도 내가 떨어질까, 잠에서 깰까 조심스레 품에 돌려 안으셨다. 아버지 품안에서 스며나오는 아버지 냄새. 지금도 그때의 그 느낌과 그 향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잠을 재우려고 등에 업을 때면,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이들이 컸을 때, 이 날의 기억을 간직하길 바라면서.

또 하나 함께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풍겨나던 애프터쉐이브 향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제품이지만, 하얀색 사기로 만든 병에 돛단배가 그려진 애프터쉐이브였다. 영화 ‘나 홀로 집에’서 주인공 케빈이 얼굴에 바르고 깜짝 놀랐던 명장면에 바로 이 제품이 사용되었다. 유년시절 추억의 향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으리라. 잊고 있었던 그 향을 월그린(Walgreen)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에게 있어 이런 기억은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어느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누군가 나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나 아닌 누군가를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십분 이해하면서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특히나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람들과 떨어졌을 때, 다수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오랜만에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났는데, 만일 상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함께 했던 추억을 잊고 있다면? 반대로 나를 기억하고 찾아온 상대를 기억해 주지 못한다면? 그처럼 서글픈 일이 없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 사자성어로 ‘거자일소’(去者日疎). ‘떠나간 사람은 날이 갈수록 멀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떻든지 기억을 남기고자 노력한다. 일기를 쓴다든지,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든지. 잊혀짐은 역시나 슬픈 일이다.



치매를 가지신 부모님들은 다른 건 다 잊어도 자식에 대한 기억만큼은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쓴다. 간혹 자식을 못 알아보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뇌신경이 마비되어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몸은 자식을 기억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마음 뿐 아니라 몸에 새겨진 사랑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잊혀질까봐 매일 주문처럼 달달 외우신다. 우리 아들 이름은 누구이고, 우리 딸 이름은 누구라고. 어렸을 때는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잊지 말고 순종하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을 잊지 않기 위하여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가르치며, 손목에 매달며, 문설주와 문에 기록하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말씀과 명령을 지켜 행하고 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쉐마교육’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이 떡을 먹을 때마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스스로 그들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다. 우리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잊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바쁜 일상이라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잊으면 안된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절대 잊으면 안된다. 은혜는 익숙해지면 반감되지만, 날마다 새롭게 하면 배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도 기억되어야 한다. 구원받은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이다.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살면서도 너무나(?) 익숙해진 탓에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다. 미국과 각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그 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도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잊혀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예수님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씻겼던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아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예수님께 받은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주님을 마음에 새기고자 했다. 잊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도 이 여인을 기억에 담으셨다. 복음이 전해질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여인이 기억되었다. 우리도 우리는 예수님께 이와 같은 칭찬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주셨다.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이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가만보니 성령으로 충만할 수록 예수님이 생각난다. 성령은 예수의 영(행 16:7)이시기 때문이다.

달라스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봄에 맡는 향기 속에 잊고 지내던 추억이 떠오른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조금의 공백도 없이 그곳으로 나를 이끈다. 그리운 사람들, 정겨운 장소, 웃고 울었던 사건들이 오늘 일처럼 스쳐 지나간다. 주님과의 아름다운 동행 한 자락을 하나님 나라에 쌓아둔다. 잊지 않기 위해. 혹 잊혀지더라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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