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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 신뢰 저축 통장(Trust Saving Account)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9/02 16:40

정평수(제1회 텍사스 한인 예술 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가족들은 휴가 중이다.
덥고 바쁜데 연말에 가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두 아이와 한국으로 떠났다.
다녀온 지 삼 년이 지난 지라 무척 가고 싶어 했다. 장인 장모님과 통화를 했는데 얘들이 눈에 아른거려 보고 싶다고 하셨단다. 그래, 지금 안 가면 언제 가겠나 싶어 마음을 정리한 후 잘 배웅해 주었다.

이틀 뒤인 7월 22일은 정부로부터 감사가 나온 날이다. 지난 이월에 감사 통보를 받고 감사를 받는 날까지 자나 깨나 걱정이 앞섰다. 날마다 촘촘한 일정이어서 일과가 끝난 후에야 감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올 상반기는 참으로 힘들었다. 나와의 힘든 싸움이었다. 무사히 감사를 마치고 나니 아내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사라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살면서 언제 쉬운 적이 있었던가! 요즘 들어 부쩍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50이 넘으니 생각과 일 처리 속도가 늦을뿐더러 의사 결정도 더뎌졌다.

오늘은 아침 8시에 근무를 시작했다. 처음 내담자는 아동 보호소부터 의뢰 받은 30대 초반 백인여성이었다. 하루는 남편과 메스엠페타민methamphetamine을 하였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집이 지저분하다는 남편의 잔소리에 아내가 남편을 폭행하여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였고 아이가 마약 현장에 있었기에 아동보호소로 경찰이 연락하게 된 것이다. 이들 부부는 마약 소지로 감옥살이 하고 출소하여 아동 보호소에서 요구하는 치료 명령을 이행하고 있다.

두 아이는 부모로부터 격리가 되어 아동보호소에서 지정하는 집에 살고 있다. 벌써 일 년 전의 일이다. 이들 부부는 아동 보호소의 조건을 이행하기까지 다른 사례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가정 폭력과 마약 소지 혐의로 감옥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고, 자녀의 양육권과 자녀들을 격리를 당하다 보니 분노가 대단했었다. 그래서 변호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보려 했으나 해결되지 않아 아동 보호소의 요구하는 조건에 따르게 된 것이다. 아동 보호소 조건에 따르지 않을 때는 입양 절차를 밟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동보호소를 상대로 반항도 해 보지만 궁극적으로 아동 보호소에서 요구하는 절차를 따르게 된다. 메스엠페타민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나, 우리에게는 히로퐁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일본식 필로폰의 잘못된 발음이다. 이 필로폰은 한 일본제약회사의 상품명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에서는 뽕이라고 별칭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메스엠페타민을 줄여서 메쓰 meth라고 부른다. 오늘날 가장 유행하고 위험한 마약 중 하나이다.

아동 보호소와 관련된 문제를 보면 부모들의 마약, 가정 폭력, 성적 학대,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체벌등이 문제가 된 사례들이다. 아동보호소 Child Protection Services 의뢰를 받은 환자들은 가정법원에서 심리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곳에서는 과연 부모가 아이들을 안전하고, 신체적 정서적 성장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며, 한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 시킬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고려한다. 그래서 개인 상담, 부모교육, 마약 치료, 심리검사, 부부 상담 등을 기본으로 요구하고 개인의 문제에 따라 다른 치료들을 추가하게 된다.

가정법원Family Court에서 여러 번의 심리court hearing을 통해서 요구하는 조건들을 준수하고 있는지, 얼마나 부모가 변화되고 있는지를 심리하게 된다. 그 진행에 따라 요구 조건들이 달라지거나 추가 될 수 있다.

많은 아이가 부모의 이혼이나 미혼모에 의해 홀 부모 밑에서 자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두 집 살림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살며 그에게 아버지라 부르라 하고, 아버지 역시 다른 여자와 살면서 그녀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기를 요구한다. 아이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다. 요즈음은 한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법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녀 양육비이다. 이런 경우 가정법원에서는 친자 확인 절차DNA test를 밟게 된다.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담 시간이면 남자 친구가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고 심하게 불평을 늘어놓는 여성이 있었다. 증인subpoena참석 통보를 받고 법원에 출두하여 재판 시간에 기다리고 있는데 가정 법원 검사가 재판이 취소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친자 검사에서 친부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와 재판이 취소된 것이다. 며칠이 지나 상담시간에 물어보니 한 남자와 하룻밤 잤는데 하필이면 그 남자의 아이가 생겼다면서 본인도 몰랐다고 했다. 그 이후 그 남자는 상담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자란 자녀들의 경우 부모와의 신뢰 관계가 무너져 버린 상처가 인생의 전반으로 확대 지배하기 때문에 대인관계 있어서 갈등이나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녀는 마음속에‘다른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 손해다’라는 고정 관념의 가치관이 형성될 수도 있다.

한 사건을 통한 경험을 인생 전반문제로 일반화 generalization시키는 것은 그릇된 사고이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을 믿지 못하고 상대방도 힘들게 한다. 그릇된 사고가 본인을 더 집착하게 한다. 의처증이 그런 예 중 하나이다. 배우자를 믿지 못할 때 배우자도 힘들지만, 그 환경에 자란 아이들에게도 불신의 씨앗을 심어 주게 된다. 요즘 결혼 하기 전 재산 분할에 대한 혼전 합의서prenuptial agreement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상담 의뢰가 종종 들어온다. 결혼 전 이혼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 두는 문서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결혼한 후 각기 개별 통장을 갖는다. 요즘의 추세이다.
아내와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할 수 있었던 것은 빈약한 은행통장 관리를 맡기는 것이었다. 통장관리를 통해서 마음의 신뢰를 더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개인 통장을 가져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부부들은 개인통장에 자기 수입을 관리하고 공동으로 지출해야 하는 부분은 공동계좌를 개설하여 함께 공유한다.

아내와 26년간 결혼 생활을 해왔다. 우리는 각자의 통장이 없다. 많은 햇수가 지났지만 지금도 은행계좌는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자 계좌가 있는데 그것은‘신뢰 저축 통장’이다.
오늘도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한다. 실뢰 저축 통장에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나의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야 겠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 때 손을 내밀고 싶다. 도와 달라고……

텍사스의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바짝 말라가는 잔디가 안쓰럽다. 문화가 다른 차이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하리만치 말라간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신뢰저축계좌 하나를 열고 살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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