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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 복있는 순서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9/09 15:47

옛날에 스님이 정승 집의 대문을 두드렸다. 마당쇠가 나오자 스님은 시주를 요구했지만 깐깐한 주인어른의 성미를 아는지라 마당쇠는 스님을 쫓아내려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 궁궐에서 귀가하던 정승은 이 모습을 보고 가마에서 내려 다가오며 물었다.

“왠 소란이냐?”
“쇤네가 안 된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시주해달라고 땡중이 들러붙습니다요.”
된통 매라도 맞을까 마당쇠는 울상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스님이 정승을 보며 합장하며 인사를 하자 정승은 스님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인심 쓰듯 제안을 했다.

“좋소. 내게 덕담을 한마디 해주면 내 시주를 두둑이하겠소.”
스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또박또박 큰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죽고, 아비가 죽고, 자식이 죽을것이라...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정승과 어이가 없어서 “허..”하는 짧은 탄식이 흘렀다. 그리고 마당쇠의 입에서도 피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덕담을 해달라니 죄다 죽는다는 소리만 하는것이 아닌가!
정승은 마당쇠를 향해서 소리쳤다.

“내, 저눔의 땡중을 가만두지 않겠다. 시주도 못하고 다니게 반병신을 만들어라!”
정승은 그 소리를 듣고도 평안한 얼굴로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당쇠가 나무막대를 가지러간 사이에 집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영감, 큰일 났습니다요. 도련님께서 동무들과 노시다 산중턱에서 굴렀습니다.”
정승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몇 년을 기다려 얼마나 어렵게 낳은 삼대독자 외아들이란 말인가!
“그래,,그래서 어찌되었단말인가? 살았는가 죽었는가?”
“다행이 다리만 다쳐서 들것에 실려 오고 있습니다요.”
후,,, 정승은 다리힘이 풀렸다. 죽지 않아 다행이고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마당쇠가 튼실한 나무막대를 찾아서 손에 퉤퉤 침을 뱉으며 매질을 할 요량으로 뛰어왔다. 그제야 정승이 주변을 보았으나 스님은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스님의 뒷모습을 보며 정승은 반짝,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가 죽고, 아비가 죽고, 자식이 죽을것이라... ’
“오호라.. 참으로 덕담중에 덕담일세.”
정승은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스님을 보며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나도 잘 모르겠다. 15년도 더 지난 처녀시절에 회사를 다니면서 직원들의 교양증진 차원으로 열리던 강의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강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그땐 남자친구도 없었고, 결혼 생각도 없었고 그랬기에 물론 자식도 없었지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가슴 속 깊이 새겨졌다. 다행이 양가 부모님들은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우리 부부와 셋이나 되는 자식들도 건강하게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건 순서가 있어도 가는건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마흔이 넘은 지금, 돌잔치는 갈일이 전혀 없고, 결혼식 초대장도 뜸하지만 장례식에 갈 일은 드문드문 생긴다. 그리고 가끔씩 이웃들의 비보를 접하면서 위로와 동시에 내 가족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위안도 받는다. 긴 생명줄에 줄서서 새치기를 해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미안하고 이기적이지만 나는 그렇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복이 있는 순서를 맞이하길 바라며 오늘도 파이팅이다!

허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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