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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이 뛴 4년 연봉 120배 겁나게 뛰었네요

'축구판 신데렐라' 권경원 인생역전

프로 첫 시즌엔 전북 벤치 멤버
UAE 거쳐 톈진 이적 몸값 대박
훈련 독종 최강희 감독 혀 내둘러
헌신 지원해준 가족들 큰 버팀목
A대표 꿈 "차근차근 준비할 것"


권경원(25.톈진 취안젠). 이름마저 생소한 5년차 프로축구 선수다. 2013년 전북 현대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지만 존재감 없는 무명의 선수였다. 국가대표 즐비한 전북의 벤치멤버에 연봉 3000만원 태극마크 경험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로부터 4년. 권경원은 이제 아시아 클럽축구를 대표하는 '귀한 몸'이다. 2015년 알아흘리(아랍에미리트)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할 때 수비전력의 핵이었다. 대회 베스트11에도 뽑혔다. 그런 그의 가치를 지난해 중국 프로축구 톈진이 알아봤다. 이적료만 1100만달러(132억원). 2015년 동갑내기 손흥민이 바이엘 레버쿠젠(독일)에서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로 옮길 때 기록한 3000만 유로(380억원)에 이어 한국선수 2위다. 연봉은 4년만에 120배 뛴 300만달러(36억원)다.

팀 합류차 중국 출국을 준비하던 권경원을 만났다. 속물스럽지만 돈 얘기부터 물었다. 그는 "톈진의 첫 월급이 이달 말 들어온다. 주변에선 '좋겠다''부럽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감 만큼이나 겁도 난다"고 말했다. 월급으로 3억원 일당으로 1000만원을 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돈으로 뭘할지 묻자 "돈은 부모님이 관리하고 나는 축구만 신경 쓸 뿐"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권경원의 진가는 알아본 건 외국인 지도자들이었다. 2014년 2월 전북의 브라질 전지훈련 때다. 전북 캠프를 방문한 펠리페 스콜라리(69.브라질) 광저우 헝다 감독은 연습경기를 본 뒤 "저 선수(권경원) 잘 다듬으면 유럽에서도 통하겠다"고 칭찬했다. 전북에선 그 때만 해도 그저 의례적인 얘기로 여겼다.



2015년 전북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렸다. 전북은 그곳에서 알아흘리와 연습경기를 했다. 경기가 끝나자 코스민 올라로이우(48.루마니아) 알아흘리 감독이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전북에 권경원 이적을 요청했다. 제시 이적료가 300만 달러(36억원). 전북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권경원은 알아흘리에서 열심히 뛰었다. 이번엔 알아흘리에서 선수와 코치로 활약했던 파비오 칸나바로(44.이탈리아)가 그를 주목했다. 칸나바로는 지난해 톈진 지휘봉을 잡자 알아흘리에서 눈 여겨봤던 권경원을 원했다. 그렇게 해서 톈진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 모든 것이 권경원 혼자 힘으로 이뤄낸 건 아니다. 가족들의 희생과 지원이 밑거름이 됐다. 아버지(권상조.60)는 택시운전을 어머니(이미숙.58)는 식당일을 하며 축구선수인 그와 태권도 선수인 형(권운영.28)을 뒷바라지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생활이 어려워졌다. 아들 둘을 모두 운동시킬 형편이 되지 않았다. 형이 도복을 벗기로 결심했다. 권경원은 "어렸을 때였지만 형이 엄마한테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게 되도 좋으니 경원이가 맘껏 축구할 수 있게 해주자'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을까 이제야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축구를 하며 겪은 어려움은 사치였다"고 말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권경원은 1년간 브라질에 축구유학을 다녀왔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축구에 눈을 뜨는 계기였다. 그는 대학(동아대) 시절 매일 새벽 산길을 달리며 체력을 키웠다. 현역 때 '독종'으로 이름을 날린 최강희(58) 전북 감독조차 "절실함으로 따지면 팀에서 (권)경원이를 따를 선수가 없다"고 했을 정도다. 실제로도 절실했다. 그는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가 다친 것도 형이 운동을 그만둔 것도 아빠가 밤낮없이 일하는 것도 다 나 때문이라 생각했다. '무조건 성공한다'는 각오로 버텼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 후에도 권경원은 가족들 덕분에 축구에 몰두한다. 형 운영씨는 동생이 알아흘리에 입단하자 직장을 그만두고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부모님까지 현지에 합류해 온가족이 모여 살았다. 권경원은 "가족은 옆에만 있어만 줘도 힘이 된다. 톈진에서도 함께 지낼 계획이다. 다같이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며 웃었다.

권경원에게는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국가대표로 뽑혀 태극마크를 다는 일이다. 그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하겠다"며 직접적인 언급은 삼갔다. 하지만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동안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검증 기회가 올 거라는 게 축구계 중론이다. 완생으로 거듭나고 있는 축구 미생 권경원. 그의 성장스토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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