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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221>흑인 노예 잔혹사3

노예선이 묶인 흑인들을 잔뜩 싣고 대서양을 건너서 신대륙으로 항해하는 데는 무려 두 달이나 걸렸다.

당시에 에어컨이 있었겠나? 냉장고가 있었겠나?

배 밑창이 더워도 매우 더운 데다가 먹을 것이라고는 건빵과 마른 옥수수와 감자 포도주 탄 물뿐이었다. 그나마 물을 자꾸 달라면 "너 먹을 물이 어디 있니?" 하고는 쥐어박지 화장실 가겠다고 하면 당시 배에 화장실이 어디 있냐? 그냥 그 자리에서 볼 일을 보게 했다.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배 밑창은 완전 바닥이 아니라 바닥에서 1피트쯤 위에 판자를 깔아놓고 가장자리에서는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먹고 싸고 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두 달씩 배를 타면서 버틴 것이 용하고 버틴 노예들은 당연히 적자생존에 해당되니까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끌려온 노예들이 사탕수수 농장이 집중되어 있는 서인도제도 브라질 중미 북미에 자손을 퍼뜨려서 우리가 지금 보는 미국과 중남미의 흑인이 된 것이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노예로 끌고 가기 전부터 아프리카에는 물론 일찍부터 노예 매매가 있었다. 주로 이슬람 상인들이 노예 무역을 담당했는데 그들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인도 직물이나 연장 구슬 등을 주고 그들의 금이나 노예를 대가로 받아 갔다. 이슬람 상인들에 의하여 끌려 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투르크 페르시아 인도 등에 팔렸고 특히 인도 지역에 팔린 노예들은 군대에 크게 진출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땅보다도 사람이 더 중요한 재화였기에 노예 획득을 위한 전쟁도 흔했다. 즉 전쟁 포로 가뭄 홍수 등의 자연 재해로 생겨난 난민 범죄인 등이 보통 노예로 팔렸다. 이렇게 이슬람 상인들에게 팔려간 노예만도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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