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세탁기로 들어간 손자의 핸드폰
"할머니, 내 핸드폰이?" 손자가 2층에서 퉁탕퉁탕 급하게 뛰어 내려온다. 청바지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세탁기를 끄고 전화기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전화기는 이미 죽어 마치 시체처럼 보였다.손자가 13살 생일선물로 받은 지 겨우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다. 그간 손자가 핸드폰 선물을 받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공부 할 때나 밥 먹을 때 그리고 피아노 칠 때도 옆에 두고 온통 핸드폰에 푹 빠져 있었다.
벙어리가 된 핸드폰을 이리 저리 만져 보면서 눈물을 글썽 거리고 있는 손자가 불쌍해 보였다. 손자는 자기가 잘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지만 살피지 않고 서둘러 청바지를 세탁기에 집어넣었던 실수를 생각하고 마음이 안타까웠다.
손자의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다니엘, 걱정 마라. 할아버지가 새로 하나 사 줄게" 하셨다. 그러나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아들)는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면서 당장 사 주는 것은 교육상 나쁠 것 같다고 아버지(할아버지)에게 귓속말을 한다. 그러면서 "주급으로 받는 돈을 6개월만 모으면 새로 살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손자가 머리는 끄떡이고 있었지만 얼굴은 한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날 밤 손자의 아픔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옆방 손자의 방에서는 이따금 한숨 소리가 숫제 신음소리처럼 들렸다. 이튿날 아침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내가 호주머니를 한번 살펴보아야 하는데" 하면서 아들을 설득했다.
결국 할아버지가 새로 사 주기로 했다. 할아버지, 아들, 그리고 손자 3대가 핸드폰을 사기 위해 문을 나서는 모습은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것같은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얼마 안 되어 손자가 핸드폰을 들고 환한 얼굴로 현관문을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다니엘에게 조금 비싸도 괜찮으니 마음대로 골라 보라고 했지만 손자는 그전과 똑같은 것 하나를 골랐다고 한다. 계산대에 가서 돈을 내려고 했더니 뜻밖에 가게 주인이 "이 전화기를 산지 일주일 밖에 안 되었으니 새 것으로 그대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라면서 새 것을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나 있을 법 한 일 같이 여겨졌다. 잠깐의 실수와 손자 핸드폰의 죽음으로 온 식구가 한바탕 몸살을 치렀지만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똑같은 실수는 안 할 것이고 삼대가 사는 온 집안이 이전 보다 더 화기가 넘쳤다.
이영순 / 샌타클라리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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