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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명예 따르다 생긴 병, 약으로만 치료 안 돼"

1.5세 한인 의사 제시카 조 원장에게 듣는 '건강학'
20년 주류 유명인사 상대하며
통합의학 '원인 치료'에 눈 떠

현대의학 최신 성과 응용하며
다이어트·스트레스 관리 '명성'
"인간 질병 60~80%는 유전적
의사는 최선의 반창고 붙일 뿐"




사람을 만나 대뜸 무슨 곡을 좋아하느냐고 묻곤 한다. 때론 몇 시간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 음악 하나가 한 인생의 윤곽(outline)을 보여 준다.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요." 중학교 3학년 지선(제시카 조 원장의 한국 이름)은 부모를 따라 이민왔다. 예술학교로 유명한 선화중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던 때다. 미국에 올 때 가장 좋았던 것은 '피아노를 안 쳐도 되겠구나' 였단다. 엄마가 강제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선은 현재 의사다. 주류 사회 한복판인 센추리시티의 'Wellness at Century City' 병원서 주로 할리우드 영화계 인사와 베벌리힐스 사람들을 진료·치료한다.

"저는 반창고예요." 제시카 조 원장은 자신이 하는 일(의사)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반창고'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질병은 60~80%가 유전적인 거다. "좀 어두운 얘기지만, 아무리 운동을 해도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담배를 평생 안 피운 할머니가 폐암으로 사망하기도 하고, 20년 전 담배를 끊었는데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해요. 또 아무리 안 먹고 힘들게 운동하면서 살을 빼려 해도 그대로인 분도 많아요. 다분히 유전인자에 기인하는 거죠."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보면, 신이 있고 인간이 있다. 사람은 여기저기가 고장 나고, 아프고, 때론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인간이 통제 불가능한 유전자 때문이라면 사실상 못 고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제 입장에서 보면, 몸에 이상이 오거나 병이 생기면 사실 신만이 완벽하게 고칠 수 있습니다. 의사는 오랜 기간 수많은 의학적 실험, 질병에 대한 연구, 치료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통계를 촘촘히 연결해 그 중에서 병을 낫게 하는 최선의 반창고를 선택하는 거죠. 쓰라리고 아프면 일단 붙여야 하잖아요."

지선은 82년도 미국에 와서 LA북서부에 있는 채츠워스고교에 다녔다. 성격도 밝고, 학업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소녀에서 숙녀로 접어들 때, 완전히 바뀐 공부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UCLA)서 출발은 '공대녀'였다. 엔지니어링 학부 'Bio-Medical'. 2년을 다니던 중 한국의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단기연수를 떠났다. 갑자기 오빠가 했던 의학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 알아봤더니, UCLA서 취득한 학점이 인정되지 않았다.

돌아왔다. "그래, 본격적으로 의학공부를 해보자." 전공을 의대로 바꾸면서 생고생이 시작됐다. 고교 시절이나 대학 초년병 때는 전혀 느껴보지 않은 영어가 문제였다. 토론식으로 풀어나는 의학 수업에서 영어를 쓰며 복잡한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려운 의학 단어는 외우면 됐지만, 토론하고 주장하는 데서 막히더라고요. 때론 뻔한 결론인데, 그걸 풀어나가려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악바리 근성으로 결국 의사가 됐다. 그리고 흰 가운을 입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이 시간을 모세의 광야생활에 빗댔다. "어수룩한 동양 여자로서 더구나 완벽하지 못한 영어 실력으로 미 상류사회에서 셀 수 없는 가슴앓이와 절망·곤욕,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어요." 수면에 우아하게 앉은 백조로 보였지만, 물속에서는 힘겹게 발을 지치고 있었다.

부와 안정을 위해 치열한 경쟁과 투쟁에 익숙해 있던 1.5세에게, 멋모르고 시작한 부자 동네에서의 의사생활은 완전 다른 문화의 세상이었다.

최고급 영어는 물론,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는 환자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 세계를 공부하듯 쫓아다녀야 했다. 인정받기 위해 관심도 없는 연예계의 가십과 영화 이야기도 뒤져야 했고, 주고객인 유대인들의 정서까지 꿰뚫어야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에서, 당당함은 서서히 부서지고 말았다. 몸까지 망가져 당뇨병이 걸린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런 힘든 순간들로 인해 진정한 겸손과 진리를 배우게 됐어요. 세상이 독촉하는 성공과 명예, 돈과 힘을 여유롭게 넘어 볼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제시카 원장은 내과 전공이지만 통합의학(Integrative)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나 감독들이 찾아오면, 그들의 외모가 아닌 영혼의 중심을 보는 데 집중합니다. 돈과 명예에 취해 사는 그들의 불안과 초조, 걱정과 근심의 병은 약으로만 치유되지 않아요.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의 원인을 이해·파악하고 환자의 심신을 치료하자는 게 제 통합의학 원리이자 철학이죠."

그에 따르면 서양의학은 몸의 질병 요인이 점점 커 나가다가 병으로 발현됐을 때 그걸 고치는 데 집중하는 거라고 보면, 통합의학은 고치기 전에 몸의 불균형을 발견하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는가 즉 방향성을 미리 주시하는 것이다. 그는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전체적인 몸 상태와 개인적 성향을 먼저 맥으로도 짚어본다. 그와 함께 혈액검사와 유전인자를 정밀 검사한다. 지금은 심혈관 질환, 치매증, 우울증, 불안증, 각종 암 심지어 비만도 유전자 검사로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환자의 현재 건강상태와 미래에 주시해야할 질환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후, 향후 건강 관리법을 판단한다.

제시카 원장은 우리 몸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 "인체는 공간이고, 그 안에는 여러 장기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혈액, 신경 면역 그리고 호르몬 등이 있습니다.

특히 호르몬은 광범위한 생물학적 다단계의 화학 반응을 통해 몸의 조화를 완성하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세계죠. 오케스트라에는 각 악기의 파트가 있는데 너무 한 파트가 과하거나 부족하면 음악이 깨집니다. 따라서 각 파트를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죠. 만약 아무리 좋은 호르몬이라도 너무 '튀면' 전체 음악에서 '삑사리'를 내는 거예요. 예를 들어 99개의 호르몬이 인체에 좋은 작용을 해도, 단 1개의 호르몬에 이상이 오면 몸 전체를 안 좋은 상태로 만들어요.

이와 같이 생리의 세계는 어느 한 개의 높고 낮음이 아니고 또한 어떤 한 부분의 중요성의 무게가 아니라, 그 모든 매개 변수들이 서로 어울리며 서로를 받쳐주고 기다려주며 협력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의 원래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 병원에서 환자들이 제일 많이 문의, 요청하는 것은 '살 빼기(다이어트)'다. "할리우드, 베벌리힐스 이 동네에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자 희망사항이죠. 이곳에서 20년 이상 일을 하다 보니 제 특기가 됐어요."

그는 다이어트는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다이어트는 삶의 균형과 조화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신체 내부의 여러 가지 복잡한 기능이 밸런스를 이뤄서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게 살을 뺀 모습으로 보이는 거죠. 신체 안에는 사실 살을 안 빠지게 하는 이유가 많아요. 그런 호르몬도 있기도 하고요. 다이어트에 앞서 그걸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유전적 인자, 각종 호르몬의 영향 등을 세밀히 살피고 치료하면서 동시에 외적 활동(운동·식사)을 병행해야 효과적입니다. 따로 크게 노력 안 해도 살을 빼려면 이게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목적으로서 체중조절은 실패하기 쉬워요. 균형과 조화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야해요. '살을 빼자'가 아니라 "이렇게 했더니 살이 빠졌네"가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툭하면 '스트레스'를 들먹인다. 도대체 스트레스가 뭐냐고 물었다. "삶의 적응력이에요. 누구에게나 있는 스트레스를 어떤 식으로 자신이 소화하며 이겨내느냐가 바로 '적응력'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정서적 반응과 건강을 결정하는 겁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호르몬의 균형이 깨진 상태예요. 인체는 부신에서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이 나옵니다.

이 호르몬은 불안·초조감을 주는 것이고, 반대로 젊음과 활력을 주는 DHEA라는 호르몬도 나와요. 서로 엇갈리는 코르티솔과 DHEA, 이 두 개의 호르몬 비율이 하루의 기분과 건강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런데 코르티솔의 생성이 너무 많아지면, DHEA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다 없어져요. 젊고 활력찬 호르몬이 안 나오니, 늙는 셈이죠. 그렇다고 코르티솔이 '적'은 아니에요. 적당 양이 필요한데 오랫동안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부신 자체가 피로해져서 코르티솔이 너무 안 나오게 되고 그러면 몸이 축 늘어지게 되는 겁니다. 흔히 '맥이 없다' '기가 빠졌다'는 상태가 되는 거죠."

제시카 원장의 소셜미디어 첫 화면에는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라는 글귀가 있다. 시편 46장 10절,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왜 이 글귀를 간직하느냐고 물었다. "제 가장 깊숙한 곳에서 외치는 메아리예요. 1분 1초도 아껴 최고와 최선을 위해 질주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명령이죠. 그런데 '가만히 있어(있어도)'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 가슴에 확 닿았어요. 뭘 찾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냥 마음이 편안해져요.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요구하는 현대에선 어쩌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의 삶을 윤곽 짓는 음악은 두 가지다. 먼저 리스트의 'Un Sospiro'. 우리 말로 하면 탄식(歎息). 음악을 틀자 피아노 선율이 파도처럼 주르륵 흘러나온다. 슬픈 듯, 경쾌한 듯, 사뭇치는 듯, 쏟아내는 듯, 위로하는 듯, 달래는 듯한 물결이 온몸을 감싼다. 또 하나는 찬송. "세상에서 오는 실망과 공포에서 흘러나오는 무언의 비명을 찬양 안에 살아계시는 그분께 고스란히 담아 놓을 때마다, 전 다시 태어났습니다." 전통찬송으로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 없네'를 아끼고, '현대복음성가(CCM)중에 카리 조브(Kari Jobe)의 'Forever'를 사랑한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달과 별이 슬퍼하고 아침 해가 지네, 세상의 구세주 그가 죽으셨네.(…) 너의 고통 어디있나? 부활하신 주가 승리를 주셨네."

두 음악을 연속해서 들었다. 어슴푸레 관통하는 그 무엇은, 존재의 나약함 속 겸손과 이로 인해 갈구하는 위로였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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