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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 세상 모든 개들에게

무술년 개의 해를 맞아 개를 생각한다.

욕먹을 이유가 없다. 욕설이 될 이유도 없다. 먹다 남은 밥 먹어주고 집을 지켜 주는데 '개같이'라니? 도둑을 지켜주고 눈과 귀가 돼 주는데 '개같은'이라며 발로 걷어차다니? 만만한 것이 희생양이 되는 세상이라지만 '깨갱' 할 수밖에 것들은 억울하다.

개는 세상 모든 을(乙)들의 표상이다. 주인이 주는 밥을 먹는 한, 개는 개가 될 수밖에 없다. 애완견으로 사냥견으로 인도견으로 치료견으로 유익하게 살아도 하루아침에 유기견이 될 수도 있는 운명이다. 여기만 한 곳이 있을까 굳게 믿으며 목숨 바쳐 일해도 하루 아침에 떨려나는 샐러리맨들처럼 발길질 당하면서도 충성을 고집하는 것이 개다. 어려움에 닥쳐도 개들은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불평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기다린다.

개는 순진무구하다. 개는 경건을 흉내 내지 못한다. 머리를 굴려 이득을 취할 줄도 모르고 육화된 충성만 존재할 뿐이다. 개는 배반을 모른다. 개는 복수를 모른다. 관계도 상질이지만 관용은 인간을 더없이 작게 만든다. 낡은 신발 한 짝을 물어뜯었다고 키우는 개를 혼을 내고 일을 나간 적이 있다. 그 날 저녁 일에서 돌아왔을때 개는 변함없이 나를 반기려 문 앞까지 마중 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작은 일에 분개한 나 자신에 화가 났다. 덥석 개를 끌어안으니 따스했다. 더 화가 났다.



개는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개는 스킨십의 달인이다.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들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개의 일관성이 우리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가? 개와 관련된 욕이 생긴 이유는 개의 단순함과 리얼리티가 인간을 폭로하는데 그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폭도가 되어가는 인간을 고발하는데 개만 한 짐승이 없기 때문이다. 개에게는 육화된 것들뿐이다. 짖고 물고 핥는 것들이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생활로 소통을 하는 것이 개다.

개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베푼 선한 일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는 서운해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개는 한 밤에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든다. 자신에게 베풀어 준 사랑과 선한 일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개는 누군가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인다. 먼 산을 보고 짓는 이유도 산 너머 작은 짐승의 울음을 듣기 때문이다.

육회 한 점 먹는 기분으로 나의 졸시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2018년 개의 해에는 세상 모든 을(乙)들이 춤 출수 있기를. 그들의 희망하는 좋은 세상이 추상이 아닌 정밀이기를. 꿈이 아닌 현실이기를. 생각이 아닌 실천이기를 바래 본다. 따스하고 맑은 세상을 그려본다.

개 같은 일이 많았습니다/ 개 같은,/ 이라고 욕하며 돌아서/ 침을 캑,/ 뱉어 주고 나면 또/ 개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새해에는/ 개 같은,/ 이라고 욕하지 않겠습니다/ 개같이만 살 수 있다면/ 사람 앞에 꾸밀 줄 모르고/ 사랑 앞에 계산할 줄 모르고/ 정의 앞에 타협할 줄 모르고/ 온기는 사람의 것보다 따스해// 남의 밥그릇을 욕심내지 않고/ 도적 앞에서는/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견공처럼/ 깜깜한 벽 앞에서도/ 희망을 물고 놓지 않겠습니다// 썩은 냄새를 식별하고/ 낮은 소리에도 맑게 귀를 열어/개보다도 못한 인간,/ 이란 소리 듣지 않도록/ 충직하고 용감한 날들을 지키겠습니다//

- '개같이' 전문


김은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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