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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오늘을 최고로 산다

나는 오늘을 최고로 산다. 나는 병 날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늘을 최고로, 그러니까 매일 운동과 균형 있는 식사 생활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오늘을 내 최고의 날로 산다.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게 산다.

이것은 뚱딴지 둘째의 말이다. 늘 엉뚱한 말로 우리를 웃기는 뚱딴지가 정색을 하며 "병을 치료할 때 가족은 돈 버느라 바쁘고, 커리어 때문에 바쁘고, 일하느라 바쁘고. 있지, 그게 다 핑계고 변명이야. 가족이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게 진짜 가족이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게 제일 중요한 거라구"하며 덧붙여 말했을 때는 가슴이 다 먹먹했다.

둘째가 이렇게 비장하게 가족을 강조한 것은 내가 최근에 폐암 진단을 받아서다. 내게는 두 번째 암 손님이다. 첫 번째는 5년 전 이었다. 기도에서 양쪽 폐로 들어가는 입구에 7.8cm 암이 있었다. 다행히 33번의 방사선 치료와 7번의 키모 떼라피로 암이 사라져 수술을 받지 않았다.

이번에 왼쪽 폐에서 발견된 암은 원래 5년 전부터 있던 것이었다. 당시엔 너무 작아서 두고 보자고 했던 것인데, 얼마 전에 찍은 캣스캔에서 3.5cm로 자란 것을 확인한 것이다. 늘 병원 다니면서 체크했기 때문에 미리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운이 좋았다.



요즘 들어 암은 인류에게 일상적인 병이 된 것 같다.

암이 처음은 아니니 마음은 첫 번째처럼 별 느낌이 없는데, 입맛이 떨어지고 몸이 저절로 떨린다. 잠도 안 온다. 많이 무섭고 겁이 나는 모양이다. 병원 직원들이 내 수술을 맡은 의사가 최고의 의사니 수술을 받고 나면 건강이 10배는 더 좋아질 거라고 입을 모아 덕담해주는 데도 본능적 공포감은 숨길 수가 없다.

소문내고 싶지 않은 병 이야기를 이렇게 쓰는 것은 둘째가 "엄마가 씩씩하게 암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 수많은 암환자들이 용기를 얻을 것"이라며 부추긴 때문이다. 처음 암에 걸렸을 땐 남에게 알리는 게 남사스러워 쉬쉬 하면서 치료를 받았다. 그래서 "그 여자 죽을 병 걸렸다면서요?"란 뒷담화를 많이 들었다.

그때는 운 좋게도 한국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이 주치의 어시턴트라서 각 파트의 의사들로부터 VIP 대접을 받으며 행복하게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만 있으니 모두들 얼굴색이며 표정이 말이 아니다. 그 와중에 혼자서 방긋방긋 웃으며 마치 암이 친구인양 즐겁게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런 나를 보고 천사표 담당의사는 늘 '어매이징!'이라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치료를 받고 나면 어지럽고 울렁증이 심했고, 기도를 치료하느라 기도가 부어서 식도를 누르는 바람에 아무 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식사 때마다 통증약을 먹어 목을 마비시킨 후에 유동식을 조금씩 넘겼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어려운 치료를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새로 태어난 손자를 보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강보에 싸인 손자에게서 나는 향기로운 아기 냄새는 어떤 고통도 날려주었다.

뜻깊은 사순절, 선물처럼 다시 온 암 덕분에 뚱딴지로부터 오늘을 최고로 살라는 명언 아닌 명언도 들었고, 새삼 가족의 힘도 깊이 통감하게 되었다. 둘째의 말이 아니더라도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은 내 좌우명이기도 하다. 그냥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떤 곤경이 나를 흔들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요란하게 병 자랑을 했으니 적어도 이번엔 "그 여자 죽을 병 걸렸다면서요?"라는 뒷담화는 없으리라.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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