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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 얼굴

북미 정상회담이 현실화됐다.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많겠지만 비핵화의 여정은 시작됐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세 개의 얼굴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과장된 얼굴, 평상심의 얼굴, 마지막이 포커페이스, 즉 담담한 표정이다.

평창 올림픽을 무대로 남북은 최고의 과장된 얼굴을 펼쳐 보였다. 북한의 특사가 청와대를 방문했다. 정확히 50년 전인 1968년, 북한은 청와대를 습격해 한국 대통령의 목을 따오라며 특수요원들을 침투시켰다. 이들은 청와대 코앞까지 접근했었다.

이 "만행"을 명령한 북의 지도자의 손녀와 마주 앉아 지은 문재인 대통령의 미소에는 불가피한 과장성이 있었다. 북측 인사들과 여자 하키 남북 단일팀의 북한 선수들에 대한 극진한 대접 또한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 과장된 얼굴만 있으면 철없어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웃는 격이다.



두 번째 평상심의 얼굴도 보여야 한다. 평상심은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이를 위한 대북제재란 큰 틀에 대해서 정부는 정책변화가 없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접촉 결과의 정리는 적절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서 대북제재를 완화할 계획은 없다"며 결코 "이면 합의"가 없었음을 전했다. 결론은 하나다.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때 국제적인 합의 속에서 제재가 완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성숙하고 절제된 로드맵이다.

상징성 대신에 실무형 인사들로 대북특사단을 꾸린 결정도 돋보인다. 남북 관계 정상화라는 포괄적 목표를 간과하지 않지만, 이에 앞서 비핵화란 구체적 의제를 상정하는 데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가장 확실한 조합이었다. 이들은 쉽게 말해 대한민국의 안보(싸움)의 틀을 기획하는 이들이기에 문재인 정부의 평상심을 전달하는데 적격이었다.

세 개 얼굴 중 마지막은 포커페이스이다. 남북관계 정상화는 51대49의 정책 게임이 아니다. 2퍼센트 차이를 정책추진의 당위성으로 내세울 수 없는 국가의 실존적 명제이다. 문재인 정부의 포커페이스는 야권을 향한 세칭 "쿨"한 표정 관리로 시작되어야 한다. 야권은 반론, 비난, 딴지를 동원할 것이다.

최대 야당 대표는 정치적 언어보다는 대립의 언어, 논리보다는 자극성에 의존하는 것이 당연하다. 남북 접촉을 "이적행위"로 몰아세울 정도로 야권은 민감해 있다. 여기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그럼"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실언을 해서는 안 된다. "귀당(貴黨)의 합의된 대안을 제시하시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가 정답이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반대론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한국전쟁 피해자, 이산가족들의 복잡한 마음은 "산 자여 따르라!"는 외침으로 덮고 갈 수 없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라도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은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내지는 "저기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란 구호에 익숙하다. 필자도 교외로 나갔다가 논두렁에서 "북괴 삐라"를 발견하면 경찰서에 갖다 주고 연필과 같은 학용품을 포상으로 받은 세대이다.

한국 정부의 표정 관리에는 민족주의 감정 조절도 포함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정책은 탈 민족주의로 정리된다. 중국혁명,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모두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무력 도전이지만 그 저변에는 민족주의가 깔려있었다.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증오와 투쟁의 역사이다. 그 연장선에 "조선은 하나다!", "통일은 우리 민족 끼리!" 같은 구호가 있다. 민족주의는 미국의 경계심과 반작용을 유발하는 촉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민족이 처한 이중구조를 잘 정리했다.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비핵화 문제는 남북 간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적 문제"이다.

성서의 표현대로 뱀 같은 지혜로움과 비둘기 같은 순결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정책 언어로 바꾸면 "Principled but Flexible"이다. 원칙은 지키되 유연성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 얼굴 갖기를 꺼려서는 안 된다.


이길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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