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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소심한 복수

독일 남부의 중심이자 바이에른 주의 최대 도시인 뮌헨에서 서쪽으로 약 100마일 정도를 달리면 인구 12만 명의 울름라는 작은 도시를 만난다. 도나우강의 낭만이 흐르는 이곳은 독일 쾰른 대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교회 건축물로 알려진 울름 대성당이 위치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1377년부터 1890년까지 약 500여 년에 걸쳐 건축된 울름 대성당 탑의 높이는 161m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일반 여행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역사와 전통이 잘 지켜진 지역이다. 또한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타계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울름의 기념품 가게에는 아인슈타인 관련 상품들이 즐비하다.

독일의 웬만한 도시가 그렇듯, 울름에도 시립극장이 있다.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는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발레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1641년에 세워진 이 극장은 독일 시립 극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누리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장본인으로 평가 받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젊은 시절 울름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5년간 재직하며 경력을 쌓았다.

전통 있는 울름 극장의 현 수석지휘자는 한국인 지휘자 지중배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친 후 독일 만하임으로 건너가 지휘 공부를 이어갔다. 졸업 후 유럽 극장에서 경험을 쌓은 지휘자 지중배는 2012년 독일 트리어 시립 오페라 극장의 수석지휘자를 거쳐 2015년 울름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씨와 필자와는 유럽의 한 지휘 콩쿠르에 초청되어 함께 경쟁했던 인연이 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입상에 들지 못해 함께 인근 볼로냐 야외극장을 찾아 서로의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주며 탈락의 아쉬움을 함께 달랬던 기억이 있다.

27일, 러시아 월드컵 독일과의 마지막 예선전이 열렸던 바로 그날 저녁 울름시 광장에서 야외 공연이 열렸다. 첫 번째 곡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일제히 '따단~' 하며 연주를 시작하는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 일반 대중들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곡이다. 게다가 작곡가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빛나는 곡이다 보니 콘서트의 첫 곡으로 연주되거나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단골 작품이다.



지휘자 지중배가 무대에 올랐고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그의 지휘봉이 힘차게 허공을 갈랐지만 '따단~'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등골이 오싹해진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감지했다. 머리 속이 복잡해지던 바로 순간 오케스트라의 악장(바이올린 연주자 가운데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앞자리에 앉아 단원 전체를 대표하는 연주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지휘자 지중배의 고향이 조금 전에 우리 독일을 상대로 승점 3점을 딴 바로 그 대한민국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시늉만 하고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아 지휘자를 당황스럽게 했던 것은 한국인을 향한 독일인들의 소심한 복수였던 것이다. 악장의 이야기에 광장을 채운 관객들은 웃음과 환호성으로 대답했고 지중배를 향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 경험을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함부르크의 명물로 자리 잡은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독일팀과 맞붙은 세 나라의 경기에 앞서 상대국의 국가를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짧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멕시코와 스웨덴을 거쳐 한국전이 열리기 하루 전인 23일에는 애국가 영상이 등장했다. 한국어로 짤막한 인사말까지 곁들였다. 상대국의 국가를 연주하는 그들의 여유와 세심함이 느껴졌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경합은 모두 마쳤다. 더 갈 수 있었을 텐데 싶은 짙은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아쉽지 않았던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우리는 열정을 불태운 아름다운 젊은이들로부터 훨씬 아름답고 좋은 기억을 선물로 받았다. 그럼 됐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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