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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 스토리] 세계를 점령한 카버네 소비뇽

지금 나는 또 다시 와인시험 준비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세계 각국의 토양과 기후, 그리고 포도 품종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다. 좀 더 좋은 와인, 좀 더 많은 와인을 알기 위해 와인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는데, 와인에 대해서는 하나도 못 배우고 영문도 모른 채 세계 기후에 대해서만 열심히 파곤 했다. 이러다 세계지리에 대해 '도사'가 될 판이다. 그런데 이게 재미가 있어지고 있다. 기후와 토양을 배우면서 와인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 곳의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 인생의 지평이 더 넓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와인을 배우면서 인생이 풍요로워졌다고나 할까. 지금 세계 방방곡곡의 와인 역사와 와인 관련 법규, 토양과 기후, 포도 품종과 와인 제조까지 와인에서 제일 중요한 기본을 쌓고 있음을 느낀다. 뒤늦게 '한 소식'을 들었다고나 할까. 득도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오늘은 세계 와인 산업의 기본인 카버네 소비뇽 품종에 대해 알아보자. 세계의 상업용 포도 품종이 1만여 종이 넘어가지만 우리가 와인 세계에서 실질적으로 접하는 포도 품종은 대략 20여 가지 정도다. 그중에서도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심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포도는 바로 카버네 소비뇽이다. 전세계 어디를 돌아봐도, 심지어 중국에서도 카버네 경작과 생산은 늘고 있다.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들이면 기본적으로 꼭 카버네를 경작한다. 이 정도면 '카버네=와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예로부터 중국사람들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선문답을 하기로 유명하다. 카버네 소비뇽도 마찬가지다. 중국사람 10명에게 물어보면 10명의 대답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보르도 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최소한 프랑스의 카버네 생산만큼 카버네를 경작한다. 또 일부에서는 프랑스 재배면적의 3배나 되는 면적에 카버네를 재배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만큼 중국이 카버네를 많이 재배하고 있는 셈이다. 카버네와 많이 블랜딩하는 보르드의 다른 품종들인 멀로와 카버네 프랑크, 말백과 칼메니에도 같이 경작하지만 단연 으뜸은 카버네다.

카버네 소비뇽의 고향이 어디인가를 두고 구구절절한 억측이 있었고 아직도 출생지가 명쾌히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보르도의 유명세에 따라 보르도 인근 정도로 추정되며 이름 자체가 약간의 힌트를 내포하고 있다. 소비뇽은 '야생'을 뜻하는 프랑스어 '소비지'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즉 야생에서 잘 자라는 품종임을 알 수 있다. 카버네는 햇빛만 있으면 기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재배하기가 쉽고, 와인으로 만드는 방법도 수월하다. 또 맛이 독특하며 오랜 기간 숙성할 수 있어서 와인의 신세계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주 나파카운티, 호주의 쿠나와라와 마가렛 리버, 뉴질랜드의 허크스 베이, 남아공의 스텔렌 보쉬, 칠레의 마이포 등에서도 종주국 못지 않게 터줏대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세계에서도 굳건히 뿌리를 내린 것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다소 건조하며, 공기가 잘 통하는 자갈밭같은 토양이 알맞다. 그래서 야성미가 강하다. 껍질이 두껍고 색깔이 진하며, 타닌성분이 많아 떫떠름한 맛을 띤다. 블랙페퍼와 그린페퍼콘을 섞어놓은 맛이다. 너무 강해서 주로 블랜딩을 하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대중적인 프리미엄급 레드 와인 포도 품종은 멀로였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조사 결과 카버네 소비뇽 재배면적이 전세계적으로 34만1000핵타르로 집계되면서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카버네 소비뇽은 카버네 프랑크과 소비뇽 블랑의 혼혈이다. 이같은 사실은 1996년 세계적인 농과대학인 UC데이비스의 캐롤 메레디스 박사가 DNA 검사를 통해 밝혀냈다. 메레디스 박사는 진판델의 원산지가 크로아티아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50여 포도 품종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며, 지난 2009년 미국 와인요리연구소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인물이다. 재미난 것은 재배면적 1위를 다투곤 했던 카버네와 멀로가 사촌간이라는 것이다. 멀로는 카버네 프랑과 다른 품종의 혼혈임이 밝혀졌다. 즉 두 품종 모두 부모 중 한쪽은 카버네 프랑인 것이다.



카버네는 예로부터 싸구려 와인으로 취급받았지만 5대 샤토 카버네, 이탈리아의 수퍼터스칸의 카버네, 나파밸리의 오푸스 원, 스크리밍이글 등 화려하고 멋진 카버네 리스트는 끝이 없다. 그렇다면 카버네로 만들어진 와인은 몇 종류나 될까, 유명한 와인잡지 '와인스펙테이터'는 자신들이 테스팅한 카버네 소비뇽와인이 2만4000종류를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레드 와인중에서는 어떤 품종도 카버네 소비뇽에 견줄 수 없다. 단 와인 전체로는 샤르도네로 만든 와인의 종류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버네와 잘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 첫손가락에 꼽는 음식이 스테이크다. 카버네 소비뇽의 특징인 강한 타닌이 지방과 단백질을 긁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방과 단백질로 뒤범벅된 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타닌이 강한 카버네를 한잔씩 마시면 뱃속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카버네 소비뇽에 대해 대략 이 정도만 알면 와인 전문가나 마찬가지다. 이 이상은 그야말로 와인학자들의 몫이 아닐까.


배문경 / 국제와인전문가(WSET 레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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