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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불행한 이민자

나 같은 불행한 한국 이민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한국 신문은 제목만 훑어보고 영어 신문은 꼼꼼히 읽는 나, 해외여행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어딘지 어색하고 미국 여행자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 딸들이 한인과 결혼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아빠, 월드컵 한국 경기를 챙겨 보지 않는 사람, '대장금' '모래시계'등 유명한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사람. 많은 동포들은 나를 보고 "당신이 한국인이야. 미국에 얼마나 살았다고 미국인 행세를 해. 니 생긴 모습을 봐. 당신은 조국을 배반하고 있어." 대놓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점점 조국과 멀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생각하면 나는 누구보다 한국적이어야 한다. 1975년 뉴욕에 와 계속 한인동포와 더불어 살아온 나, 한국 신문사에서 십여 년을 일하고, 한인 케이블 방송에서 뉴스해설을 했던 사람, 한인타운에서 주로 한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 온 사람, 한국어로 시와 소설을 쓴 사람, 이만하면 뿌리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민자일 것이다.

내 주변에는 이민 온 후 40~50 년 간 한 번도 모국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한국과 등을 돌릴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떠나올 때의 아팠던 기억이 있긴 하겠지만 여기 와서 완전한 미국인으로 살아온 것도 아니다. 매일 한국 음식 먹고, 한국 드라마 보고, 한인 교회 다니고, 한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저 여기 오래 살다 보니 굳이 한국을 찾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태어난 자식들이 타인종과 혼인하고, 언젠가 아이들이 사는 이 곳에 묻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조국을 배반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 나에게 한국인이냐, 아니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백인이든 히스패닉, 동양인이든 순수한 사람이면 된다.

나는 어려웠을 때 한국을 떠나 미국에 43년간 살아오면서 한국을 조금씩 잊어 가고 있다. 나는 10년 후, 이 보다 더 오래된 나를 생각하고 있다. 훌쩍 미국으로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돌아가신 부모, 형제, 아직 남아 있는 혈육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을 찾아 나의 흔적을 더듬고 싶다. 내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의 흙을 만져 보고, 재학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찾아 가마득한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다. 그 때의 하숙집이 그 자리에 있는지, 간혹 들렸던 다방이 있는지 보고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싶다. 문우 중 한 분이 쓴 책에 "내 죽음을 한국에 알리지 말아다오"가 있다. 그는 미국에 50년 이상 살아왔다. 미국이 그의 나라일 것이다. 나는 가족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한국에 알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한시도 조국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쩌다 미국이 내 나라라고 믿게 되었다. 나 같은 불행한 한국 이민자가 많지 않기를 바란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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