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아름다운 우리말] 익히다

공부(工夫)라는 말은 한자어입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공부라는 단어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한자어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각각 달리 쓰이는 말입니다. 일본에서 공부한다는 말은 면강(勉强)이라고 합니다. 공부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학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순 우리말로 공부는 무얼까요? 아마 배우다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우는 것과 익히는 것은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배우는 것에는 외부의 힘이 강하다면 익히는 것에는 내부의 힘이 느껴집니다. 물론 익히는 것에도 외부의 힘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익히는 과정의 앞에는 배우는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습(學習)'이라고 부르는 단어에는 이런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말로 해석해도 배울 학(學), 익힐 습(習)이라고 하죠.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학습입니다. 습의 해석을 '익히다'라고 한 것이 재미있습니다.

'익히다'는 말은 '익다'라는 말과 관련이 됩니다. 사동접사 '-히'가 붙은 말이지요. 익게 만드는 것을 익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익는 것은 주로 공부를 배우는 일보다는 과일 이야기나 곡식 이야기와 관련이 됩니다. 과일이나 곡식은 갑자기 익을 수도 없고, 갑자기 익힐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도 필요하고, 지나가는 바람도 필요합니다. 물론 적당한 물은 필수조건이지요. 그래야 속부터 익습니다, 아니 그래야 속까지 익습니다. 설익음을 피할 수 있는 겁니다.

익는 것은 삶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시간을 두고 담가 놓아야 삶아지고 익습니다.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가 빼면 겉만 익지 속은 그대로입니다. 그냥 데치는 것에 불과하다고나 할까요. 속은 그렇게 해서는 절대 익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익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이런 모습에서 공부를 떠올린 것 같습니다.



시간을 두고 반복하는 것,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쨍쨍 쬐나 모든 걸 견뎌내는 것을 공부로 보았습니다. 공부는 그런 겁니다. 익혀야 익습니다. '익다'라는 말은 '익숙하다'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익숙하다는 단어는 묘한 단어입니다. 익다라는 순 우리말과 익을 숙(熟)이라는 한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한자어의 놀라운 조어력을 살펴볼 수 있는 어휘입니다.

익는 것을 몸에 적용하면 익숙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에 익는다든지, 몸에 익는다든지 하는 표현을 합니다. 오랫동안 만지고 다루다 보면 손에 익습니다. 다른 어떤 물건보다 편한 느낌을 줍니다. 익는다는 말은 나와 하나가 된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내 손에 익은 물건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집니다. 장인들은 주로 늘 쓰는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음악가에게 악기나 소설가에게 연필이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배운 것을 익히는 것은 단순히 공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배운 것을 내 몸에 익게 자꾸 해 본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게 익히는 겁니다. 정말 하고 싶어서 자꾸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미 익숙해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익힌다는 말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됩니다. 좋으니까 자주 하게 되고, 자주 하니 기쁜 겁니다. 기쁨이 익어서 그대로 내 몸이 되니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