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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어머니 기일에

치과의사는 내게 이빨을 심으려면 먼저 잇몸에 인조 뼈를 심어야 한다고 했지요. 나는 왜 그래야만 하느냐고 묻지도 않고 인조 뼈를 심는데 착수했지요. 순응, 그건 슬픔이지요. 가짜 이빨 하나 얻기 위하여 입 속을 휘젓게 하는 행위 역시 역행이자 치욕이었지요. 그러나 어쩔 수 없었지요. 이빨 없으면 살 수 없으므로 두 손을 공손히 무릎 위에 모은 채 순종해야 했지요.

가짜 뼈를 심느라 오래 아팠지요. 그 일은 나를 먼 태고로 데려가는 일이었지요. 먼 기억 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아이였고 온전한 어머니의 딸이었지요.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 골목에서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해가 지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왔지요. "은자야! 밥 먹어라."

해 질 녘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요. 어머니는 나에게 진짜 뼈를 고스란히 남겨주는 가신 분이지요. 진짜 뼈를 삯 하나 받지 않고 내 몸에 이식해 주신 분이시지요. 그뿐인가요? 이식한 뼈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평생을 몸 바쳐 사신 분이시지요.

어머니가 주신 뼈가 본래부터 내 뼈인 줄 착각하며 살았지요. 내가 잘나서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지요. 불효막심도 보통 불효막심이 아니지요. 나는 늘 그랬지요. 내 몸이 어디에서 왔는지 원천도 깜빡깜빡하고 살았지요.



그 옛날, 어머니는 미국으로 딸을 떠나 보내는 마지막 예배에서 찬송가도 부르시지 못할 정도로 우셨지요. 평소 소소한 감정을 표현하시거나 우시는 법 없는 반듯하신 분이었는데 그날은 소리도 없이 뜨거운 눈물을 수십 번 삼키셨지요. 찬송가 중간중간 목구멍으로 울음 삼키는 소리가 꺼이 꺼이 새어 나왔지요.

미국 비자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시절이었지요. 비자를 손에 쥐게 되었을 때 나는 하루빨리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가고 싶어 안달했지요. 딸을 먼 곳으로 보내야 하는 어머니는 뼈를 잘라내는 아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텐데 나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토끼 눈처럼 빨개진 어머니의 눈이 삼 십여 년이 지난 이제야 보이니 늦되어도 보통 늦된 딸이 아니었지요.

어머니는 공항에 나를 마중 나오지 않으셨지요. 십 년 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가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딸을 떠내 보내며 혹 눈물을 보일까 자제하신 것이지요. 나는 그런 어머니를 아이 같다고 생각했지요. 아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끈적끈적한 시간과 어마어마한 사랑을 헤아리지 못한 채 필요한 물건들을 짐에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왔지요.

어머니는 나보다 늘 부자처럼 느껴졌지요. 그래서 웬만한 것들을 드릴 바에는 안 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요. 어머니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아주 가끔 어머니는 친구가 딸이 옷을 해 주었다고 자랑을 하더라는 말을 내게 전했지요. 나는 어머니가 그 친구보다 더 좋은 옷이 많이 있는데 뭐가 부러울까 웃었지요.

불효막심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지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전화를 걸었지요. "이서방도 애들도 다 잘 있지?" 몸이 아프면서도 밝은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놓았지요. 그리고 또 며칠을 일에 묻혀 살았지요.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요. 우리 곁을 떠나셨지요.

비행기 표를 수소문해 공항에서 화장터로 향했지요. 어머니가 불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로 전, 어머니와 나는 마지막처럼 만났지요. 유리 너머 관 속에 어머니가 계신 것을 보면서 세상에 태어날 때 울던 처음 울음으로 목 놓아 울었지요. 엄마를 부르며 실신할 정도로 우는 나를 조카가 부축했지요. 유리를 깨고서라도 유리 너머 어머니 곁으로 가야만 할 것 같았지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어머니는 세상에서 위대한 여자였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용서해 줘요. 그리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지요. 생의 가장 귀한 것을 그렇게 빼앗겼지요, 나에게 뼈를 심어 준 단 한 분의 어머니를 그렇게 허무하게 떠내 보냈지요.

가짜 뼈를 심겠다고 입을 바보처럼 벌리고 치과 병원 의자에 누워있으며 깨달았지요. 진짜 뼈를 소홀히 간수했다는 것을. 나에게 뼈를 심어주고 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창 밖을 보았지요. 창 밖 구부러진 여름 꽃들이 반듯하게 펴져 있었지요.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흐느껴 울어 본 날이었지요.


김은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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