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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비켜 서서

결혼식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그런데 5분 남짓 남겨두고 모든 하객들이 일제히 모든 대화를 멈췄다. 갑자기 숨소리조차 멈춘 듯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신랑은 씩씩하게 그러나 조금은 긴장한 표정을 한 채 들어왔다. 그리고는 엉거주춤 서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신부를 기다렸다. 신부는 하얀 드레스와 면사포를 쓰고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참 보기 좋았다.

신부 신랑을 바라보는데 알 수 없는 측은지심이 일어났다. 축가를 불러줄 우리의 순서가 되었다. 아침나절이라 많은 팀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좋게 말해 정예부대이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원수 이다. 두 사람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신랑과 신부의 얼굴 표정을 살펴봤다. 신부의 얼굴 위로 작은 웃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신랑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가 곧 내려왔다. 감동은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별로였다. 멋쩍게 내 눈시울만 뜨거워진 것이다.

처음부터 사명감에 불타 혼배 축가 팀에 적을 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일 안 하는 날 시간이나 때우자, 하면서 연습을 나왔다. 그런데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하는 선남, 선녀들에게 마음을 담아 노래로 전달하고 싶다는 작은 열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잘 부르지도 못한 노래를 듣고 감동 받는 신랑 신부를 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이 느껴졌다. 봉사를 하면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아진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살아 가는 것일까? 새삼스레 그런 생각들이 많아졌다. B스님이 쓰신 책에 그런 말이 나온다. 다른 어떤 관계와 달리 결혼은 준비 과정에서부터 철저한 타산 관계로 이루어진 극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물론 사랑하기에 만나고,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좋은 조건, 끌리는 외모, 그럴듯한 배경이 없으면 결혼은 성사될 수가 없다.



그러나 사고로 척추가 휘어지고 가슴 정맥이 파열돼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하지만 그녀의 시와 맑은 영혼을 사랑한 로버트 브라우닝. 이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의 힘으로 15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런 용기는 없다. 열정도 풋풋한 감정도 사라지고 난 후 매일을 같이 하는 부부 일상 속에서 서로 수많은 다른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그 다른 점을 못 견뎌 하고 서로 고치려 하며 싸운다. 마치 원수인 것처럼. 어떻게 해야지 둘만의 관계가 나아질까? 당연히 시원한 답은 없다.

그런데 아침 미사 중 신혼부부에게 도움이 될 한 단서를 찾아내었다. 걸어 들어오는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의 표정은 행복했다. 그는 비켜 서 있었다. 상대를 가운데 서게 하는 것. 다른 점을 인정하고 상대방 중심으로 모든 일을 생각해 내는 것. 우주의 미세 먼지 같은 크기의 지구.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있다. 하지만 우주는 단 한 번도 지구가 중심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크리스토퍼 포터는 서술했다. 적어도 집안에서는 서로가 중심이라고 배려해 주면 안 될까? 모든 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해석되고 이해된다면 싸울 일도 다툴 일도 없을 것이다.

계단을 달리듯 내려온 지휘자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고운 노래 불러주신 진정성이 가슴으로 전달되었다"라고, 그래서 "감사하였다"고 꼭 전해 달라는 신랑 신부의 부탁이란다. 부부는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 비켜 서자. 나 조차도 겨우 신부나 신랑의 눈이나 살피며 "내 노래 어때?" 하는 어줍지 않은 자부심을 가졌었나 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비켜 서서 보는 세상은 참 아름다운 것 같다.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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