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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건축] 아파트에도 이웃사촌은 있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집의 시간들(사진)'은 오래 살던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육성을 담았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주민들인데 이들의 행보는 한국 주거 문화사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파트 재개발을 돈이 아닌, 고향 상실의 관점으로 보고 있어서다. 1970~8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이 일 때 아파트에서 태어난 이들이 주축이다.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이인규씨가 독립 출판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발간하며 첫 발자국을 뗐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파트가 곧 철거될 것을 애석해하며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책을 냈다. 주변 아파트 단지로 공감대가 확산됐다. 아파트 재개발 주기와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릴 적 뛰어놀던 놀이터와 복도를 찍어 남기자는 답사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때문에 이웃사촌이 사라졌다고 믿었다. 삭막한 아파트 구조가 이웃 간의 교류를 막은 주범이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속 한 주민은 자신의 딸과 이웃집 언니의 딸이 함께 아파트 복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벅찬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과 이웃 언니 또한 함께 뛰며 자랐기에 그렇다고 했다.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이웃사촌을 만들었다. 더 이상 한 집에서 오래 살지 않는 도시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계약 기간 때문에, 교육 문제로, 시세 차익을 올리기 위해 옮겨 다니는 것이 도시민의 일상이다. 오래 봐야 신뢰가 생기고 이웃이 사촌처럼 가까워지는데 그럴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둔촌주공아파트 주민들은 "앞으로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입 모아 말했다. 아파트 단지는 건물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져 단단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5~10층 규모의 아파트 높이가 주는 안정감, 긴 세월 동안 단지를 숲으로 만든 자연, 찻길을 피해 사람 발자국으로 만들어 낸 지름길이 인상적이었다. 낡고 불편하지만 사람들은 이 생태계의 참맛을 알기에 오래 살았다.



오래된 삶터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높고 화려하게 빨리 지을 수 있는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다. 이제 아파트에 필요한 '적정기술'은 무엇일까.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적정기술, 오래 살 수 있는 주거 공동체를 위한 상상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은화 /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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