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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림이 약이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6명의 소녀들의 고함소리가 온 나라를 기쁘게 했다. 경북 의성 출신의 여성 컬링팀이 7년간 함께 손발을 맞춘 끝에 일궈낸 값진 결실이다. 화가로서 그들의 인터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술 심리치료'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선전의 비결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컬링은 호흡으로 시작해 호흡으로 끝난다"면서 "스톤을 던질 때부터 스위핑(빗자루질)까지 온 정신을 집중해야 스톤을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보낼 수 있다." 이런 멘털 훈련을 위해 지난해 도입한 비장의 프로그램이 미술심리치료였다고 한다. 그 덕분에 감정을 조절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술치료를 받는 가운데 자매(김영미, 김경애)도 좋아하는 색상이 전혀 다름을 확인했다. 영미는 밝고 은은한 컬러 쪽 취향의 차분한 성격이었고, 경애는 강렬한 색으로 용감하게 도전하는 쪽이었다. 치료를 통해 팀원들끼리 각자의 개성과 심리 상태를 이해하게 되면서 보다 자신만의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요즘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지인들 중에도 미술치료로 자원봉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까지 딴 친구도 있다. 주로 큰 병원 재활의학과를 찾아가 환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기를 통해 정서를 순화시킨다고 한다. 치매 환자가 많은 노인 홈도 이들의 단골 방문 대상이다. 화투 같은 것을 소재로 색칠하는 컬러링을 가르쳐드리면 어르신들이 아주 재미있게 몰입하고 집중한다. 어느 때보다 그림을 전공했다는 것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그림이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학교폭력이 문제가 되면 '청소년 미술치료'가 확산되고, 교도소나 외국 지진 피해지역에도 미술치료 전문가들이 찾아간다. 최근엔 그리기에 푹 빠진 일반인들도 많다. 4년 전 어른용 색칠하기 책인 '비밀의 정원'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컬러링북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색칠 공부는 어린이용이라는 관념이 사라졌다.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어른들이 색연필이나 형형색색 사인펜으로 정밀한 밑그림을 따라 색칠하면서 편안하게 힐링에 빠져들고 있다. 숨 가쁜 디지털 시대에 컬러링이나 손 글씨, 캘리그래피(아름답게 꾸민 글자) 같은 아날로그 감성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지난달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내린 '니키 드 생팔 전'은 미술이 어떻게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였다. 생팔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성적 학대와 이혼, 정신 병원 입원 등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었다. 그 당시 이런 상처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받게 된 미술치료는 그가 벼랑 끝에서 만난 돌파구였고 미술가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생팔의 작품들은 대담하다. 캔버스 위에 매달아 놓은 물감 통에 총을 쏘아 억압을 해소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그녀의 '사격회화(shooting painting)'는 피 흘리는 영혼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누보레알리즘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하였다. 또 뚱뚱한 여성을 원색으로 당당하게 묘사한 '나나(Nana) 연작'은 미의식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놓았다. 생팔은 그렇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켰고, 보는 관객들의 심리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청량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색채학에 따르면 자신에게 맞는 색이 따로 있고 일상에서 그 색을 자주 접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고 한다. 스트레스 낮추는 데는 녹색, 우울증 회복에는 빨강·노랑 같은 따뜻한 색, 불면증에는 남색·보라색이 좋다고 한다. 미술은 약이다.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여인을 보고 있으면 화면 속 평원처럼 마음이 고요해진다. 오늘 오후 홀로 가만히 컬러링북을 펼쳐놓고 한 칸 한 칸 색칠하면서 아트 테라피를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바야흐로 가을의 중심에 접어들고 있다. 잠시라도 그림으로 감성의 근육을 키워보면 어떨까 싶다.


전수경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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