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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세월에 대하여

석수의 삶은 돌을 깨뜨리고 채소 장수의 삶은/ 하루 종일 서 있다 몬티 닮은 내 친구는/ 동시상영관에서 죽치더니 또 어디로 갔는지/ 세월은 갔고 세월은 갈 것이고 이천 년 되는 해/ 아침 나는 손자를 볼 것이다 그래 가야지/ 천국으로 통하는 차들은 바삐 지나가고/ 가로수는 줄을 잘 맞춘다 저기, 웬 아이가/ 쥐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며 씽긋 웃는다// 세월이여, 얼어붙은 날들이여/ 야근하고 돌아와 환한 날들을 잠자던 누이들이여

이성복 시인의 '세월에 대하여' 부분



지난해 세상을 떠난 친구의 기일을 맞아 산소에 갔다.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준비한 음식을 나눴다. 햇살은 눈부시게 반짝였고 모인 친구들은 고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추억이란 기억들의 마찰로 생겨나는 정전기. 추억은 웃음이 되기도 하고 울음이 되기도 한다.



그 다음 살아 있는 자들은 뭘 할 수 있을까. 저마다 직면해 있는 삶의 문제들을 토로하며 왁자지껄 하다가 돌아갈 뿐이다.

공동묘지는 세월의 궤도에서 이탈된 자들의 휴식처라는 생각이 든다. 백만 대군처럼 몰려오는 세월에게 밀려가다 멈춰 선 곳, 살아서 누가 세월을 이기고 잠시 멈춰 설 수 있단 말인가.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은 머리가 허옇게 세어 종착역에 다다를 때가지 오직 달려가야 하니까.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은, 채찍을 맞고 달리는 말처럼 앞으로만 나아가던 시간의 뒤꿈치를 겁 없이 건드린 삶의 위반자들이다. 그러나 천수를 다 누리고 이승을 떠난 이들이라고 회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멈춰 선 자리에 세워진 비석의 생몰연대는 그들 삶의 밑줄이며 애석함이다.

가을 햇살은 떠난 이들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한다. 기억 속으로 돌아오려는 자들도 쉽게 돌아오도록 교각이 되어주기도 한다. 가을은 세월의 폭력성을 이해하도록 거들어 주지만 모든 여의어 가는 것들은 안쓰럽게 여기게 한다. 꽃잎 시드는 국화는 쇠락한 가문의 툇마루 같다. 고딕체로 써진 묘비명은 선명해서 슬프다.

우리는 세월이라는 모질고 거만한 배를 타고 간다. 눈시울을 붉히던 사이사이 투명한 햇살을 받아 기지개를 켜기도 하던 날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거머쥐고, 명령을 따라 행진하는 늙은 군인처럼 뚜벅뚜벅 가고 있다.

이미 사라진 내 곁의 풍경들을 소집해 본다. 세월에게 KO패 당한 싱싱함은 다시 일어설 기력을 잃은 것 같다. 시간과 뜨겁게 전투를 치르던 열정도 흔적 희미하다. "세월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갔고 나는 또 몇 번씩 그 비좁고 습기 찬 문간을 지나가야 한다"는 시인의 시구는 그래서 더 아리다.

사람도 시대도 제 보폭을 유지하며 회전할 뿐이다. 어디쯤이 멈추는 자리가 될 것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므로 세월을 아쉬워 할 것도 없다. 세월의 손을 다정히 잡고 보듬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노을에 물들어 가는 저녁을 사랑하며 그 어깨에 기대볼 뿐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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