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뜨락에서] 장애체험

최덕희 / 시인·아이사랑선교회 대표

두 주일 전인가 목요일 저녁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에 딸아이가 눈이 아프다고 했다. 뭔가 이물질이 들어간 듯 눈을 뜨지를 못하고 괴로워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안과를 찾았다. 치료를 마치고 나온 딸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각막이 손상되어서 떼어내고 다시 재생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런데 그 재생시간이 하루 밤이면 된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말에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한 시간에 한 번씩 안약을 넣기 위해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 놓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아프다고 하며 오른쪽 눈이 아픈데 두 눈을 다 뜨지를 못해서 화장실 갈 때도 부축해서 가야 했다. 불빛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방불도 다 끄고 스탠드에 검은 천을 씌워서 집이 마치 드라큘라 백작의 성 같이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긴 긴 하룻밤을 지나고 토요일 아침 일찍 찾은 병원에서 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재생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일부를 다시 뜯어내고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한단다. 검은 선글라스에 내 손을 잡고 더듬거리며 걷는 딸아이는 영락없는 시각장애인의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마저 커튼으로 차단한 채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딸이 간간이 아프다고 소리 지르며 눈이 뭐가 잘못된 거 같다고 하니 내 가슴은 점점 조여왔다. '애간장이 탄다'는 표현이 이런 느낌인가? 덜컥 겁이 났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다면, 아니 만일 눈이 잘못된다면 내 눈을 내어 줄 수 있을까? 극한 상황이 머릿속에서 연출되었다. 장애 중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 시각장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을 감고 화장실까지 가 봤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고 문까지 거리를 측정해서 복도 벽을 더듬으며… 나면서부터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중도에 시력을 잃은 사람 중에 누가 더 답답할까?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새삼 아름답고 귀하게 느껴졌다.

한 잠도 못 자고 날이 밝았지만 주일 아침이라 문을 여는 병원은 없었다. 다행히 새벽녘부터 통증이 좀 가라앉는 듯 해서 한 잠 자라고 이불 덮어주고는 교회로 향했다. 얼마만의 간절함인가? 딸아이가 성년이 되면서부터 내가 많이 의지해 왔던 것 같다. 틈나는 대로 맛집이나 명소를 찾아 나를 끌고 다녔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 와서는 꼭 어디 음식이 좋았는데 엄마랑 같이 가보자고 하는 예쁜 딸이었다. 그래도 늘 곁에 있으면서 때로는 부딪히고 귀찮아하고 짜증냈던 일들이 후회로 밀려왔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나문희가 "있을 때 잘해, 그러니께 잘해…" 하며 두 팔을 돌리던 것이 떠올랐다. 왜 누구나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지 모를까?



딸아이는 대상포진이 눈으로 온 것이었다. 한 동안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힘들어 했었다. 전임자가 잘 못하고 그만 둔 일들을 처리하는데 대한 부담과 업무과중으로 인해서 휴일에도 나가서 늦게까지 일하다 오곤 했었다. 거기에 대한 해결방안을 결국은 타협하지 못하고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 때는 스트레스를 종종 나한테 푸는 것 같아서 다투기도 했었다. 이렇게 힘든 줄 몰라줬던 일이 아프게 느껴졌다. 때때로 딸이 투정을 한다. 엄마는 남들에게는 잘하면서 내 생각은 안 해… 엄마는 왜?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너 나이가 몇인데 이젠 네가 엄마를 챙겨줘야지. 딸이 나이가 들면서 이젠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의지가 되기도 하는 것을….

성탄카드에 '사랑하는 딸에게' 라고 쓴다. 그 다음은 뭔가 어색해서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언제부턴가 카톡으로 가볍게 주고 받다 보니 진지한 표현을 잊어버렸다. 카드를 받은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는 왜 이리 애정표현이 없어 ㅋㅋ" 쑥스러워서 ㅋㅋ. 그래도 새해가 오기 전에 나쁜 일을 겪어서 다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같이 백화점에도 가고 맛집에 가서 식사도 했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감사함으로 오는 건 정말 소중한 것이 무언가를 깨닫고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을 되찾게 되어서일 것이다. 2019년은 기해년 황금돼지해라 재물운이니 뭐니 하는데 물질로도 채울 수 없는 귀한 것들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