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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겨울 산책

꽁꽁 싸매고 겨울 산책을 나선다. 바람이 차다. 겨울의 바람 속을 걸어본다는 것이 제법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 나름 긴장되는 마음이 느껴진다. 길가의 풍경이 무미건조해지고 그다지 둘러볼 구경거리도 없지만 걷는다는 한 가지가 있어 산책은 나설만한 것이다. 한 바퀴 돌고 집에 도착하니 마치 순례의 긴 길을 걸어낸 듯 성취감이 든다. 돌아와 앉아 차가워진 두 뺨을 쓰다듬으며 걸어 온 산책 길을 생각한다. 겨울 풍경은 눈을 유혹하는 것이 없어 걸어가며 그저 명상이 동행하여 깊이를 더한다.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욕심을 버린 어느 인생처럼 가난한 일상으로 서있다. 색채를 날려 보낸 화단은 잎사귀를 모두 보내버리고 빈 잎사귀를 모두 보내버리고 빈 얼어붙은 흙 위에 겨울을 이겨내는 작은 초록을 끈질긴 자세로 품고 있다. 몇 개 남아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밟으며 차가움을 밀고 나아가는 길에 겨울의 맛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겨울의 명상을 품고 차가워진 머리로 겨울을 계산한다. 인생의 겨울. 해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낸다. 겨울 나그네의 영상이 만들어 진다. 그는 불빛 따뜻한 어느 창문과 그 안에 자리 잡은 난로 불 훈훈한 정경이 그립다. 돌아서면 손 안에 넣을 수 있는 그리운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있다. 눈 쌓인 길 끝에 무엇이 있어 그것 때문에 그의 마음은 언제나 비어있다. 모두가 양지를 찾아 모여 앉는 시절에 가슴을 채워줄 한 줄의 문장, 한 줌의 미소, 한 잔의 맑은 물을 찾아 문을 열고 나선다. 겨울 나그네의 노래는 차가운 바람 속을 퍼져 나가면서 털 모자 쓰고 길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스며든다.

추운 나라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언어를 선물한다. 지구 상에서 가장 추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우리 마을이 제일 좋다는 말에 놀라며 공감하는 묘한 심리의 언어, 그리고 언어를 넘어 파고드는 얼음 속의 뜨거움이 추운 나라를 품게 한다. 깨끗함과 오염 없는 공기로 다가오는 순수함이 때 묻은 이들에게 동화 같은 하얀 나라를 꿈 꾸게 한다.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진 성채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설원을 지나 들어서는 숲 속에 통나무 집과 벌겋게 타오르는 벽난로 장작 불이 꿈 길이다. 불빛을 따라 하나 하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가 꿈꾸는 겨울 나라가 된다.



문득 돌아와 겨울 산책을 계속한다. 삶의 어떤 시기는 겨울 산책이다. 한가하게 걸을 수 없는 지경이지만 오히려 짐짓 한가해져 보는 역설적 산책 길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보면 색채가 사라진 주변의 산천초목이 그러나 아름다운 색깔을 머금고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겨울 날씨에 절망하는 나그네나 산책 자가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겨울 삶의 기이한 한 부분이다. 한 번 마음이 따뜻해지면 겨울 산책 길 삶의 어떤 시기가 괜찮은 이야기로 바뀔 수 있다. 새로운 시야로 겨울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하얀 눈이 조용히 덮여있는 겨울은 깨끗하다. 소리를 잠 재운 겨울 풍경은 소리가 없다. 그 속에서 우리는 겨울이 된다. 너무나 많은 것에 파묻혀 깨끗함과 조용함을 잃어버린 우리는 겨울 풍경에 들어서야 한다. 그 속에서 길 끝에 펼쳐진 시리게 파란 하늘을 보아야 한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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