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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할머니의 손

강인숙 / 자유기고가
강인숙 / 자유기고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7/11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9/07/10 14:54

할머니의 손은 늙은 닭발처럼, 마르고, 억세며, 거칠었다. 비누로 깨끗이 씻어도 여전히 더러워 보였다. 오래된 노동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툭툭 튀어나와 있었고, 휜 손가락 사이사이는 벌어져 있었다. 피난 후, 모질고 고된 삶의 흔적이 손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이런 삶이 할머니에겐 최선이었을까.

6.25가 발발하자, 할아버지가 사시던 함경도에서 남자들의 징집 소문이 돌았다. 할아버지는 피난 준비를 하셨다. "이 소란이 잠잠해지면 바로 돌아올 게. 한 두어 달이면 되겠지." 그래서, 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아직 백일도 안 된 아빠를 집에 남겨두고, 서울 친척집으로 피난을 가셨다. 전쟁의 공포를 함께 견뎌줄 남편도 없이, 할머니는 가장의 몫까지 해내야 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그리고 1년이 지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중공군의 참전으로 길어지는 듯했다. 그때까지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불안했다. 할아버지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마음까지 들었다. 빨래를 하다 문 밖을 초조하게 바라보셨고, 밖에서 인기척이라도 나면, 맨발로 뛰어나가곤 하셨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났을 때, 할머니는 짐을 싸셨다. 살이 올라 무게감이 있는 아빠를 등에 들쳐 업고, 먼 길을 가기엔 어린 5살 된 고모의 손도 꼭 잡았다. 그리고, 시부모님께 할아버지를 찾아 돌아오겠다고 말씀드리고, 서울로 길을 떠났다. 서울도 전쟁을 겪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건 천운이었다. 피난을 포기한 친척이 서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시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셨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 소식에 선뜻 짐을 다시 꾸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순하고 점잖은 분이셨다. 하지만, 돈 버는 재주는 없으셨다. 그래서, 모든 생활은 할머니의 몫이 됐었다. 할머니가 끼고 있던 가락지와 치마 속에 숨겨온 약간의 패물은 장사 밑천이 되어 하나씩 하나씩 팔려갔고, 대신 도라지, 더덕 같은 나물과 따끈한 두부를 사다 파셨다. 흙 묻은 도라지는 할머니 손가락에 거뭇거뭇 물을 들였고, 칼로 껍질을 벗길 때는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셨다. 베인 상처는 아물면서 살이 두꺼워져, 딱딱하고 거칠게 변했다. 이제 막 만든 뜨끈한 두부는 할머니의 손바닥 껍질을 훌러덩 벗기기 일쑤였다. 집에서 콩나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물 호스를 쥐셔야 했던 할머니의 손은 휘고 손가락 사이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 년을 사셨다. 그 사이 뒷짐 지고 사시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또 다시 혼자가 되셨다.

할머니의 손바닥엔 손금이 없다. 대신 손등에, 손 마디 마디에 굵게 새겨져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손에 할머니 삶이 보여. 이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겠지?"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어. 전쟁이 다 가져갔지, 십 원 한 장 없이 피난 왔으니, 배운 것 없는 내가, 네 아빠하고 고모 굶기지 않으려면 뭐든지 했어야 했어. 이 손이 할 일이 많았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축 쳐진 할머니의 눈꺼풀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나는 말했다. "거친 할머니 손을 보면, 전쟁이 참 밉다. 모두를 힘들게 했잖아. 그래도 잘 견뎌준 우리 할머니,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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