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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새로운 시선

유학 초반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여름 음악제에 참여했었다. 전 세계 젊은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오디션 투어를 통해 선발한 연주자들을 초청해 여는 페스티벌이다. 참가자들로 구성된 다양한 실내악 그룹이 로컬에서 콘서트를 열고, 초청된 유명 음악가들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한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삿포로뿐만 아니라, 일본 다른 도시의 연주 투어를 갖는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음악가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인연을 갖게 되고, 명성 있는 지휘자와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를 꾸몄던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 당시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특급 음향을 자랑하던 콘서트홀, 빈틈 없는 진행 요원들과, 삿포로를 찾은 음악가들을 가족처럼 대해준 현지 주민들,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게 느껴졌다.

당시 예술감독은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였는데, 레너드 번스타인의 어시스턴트로 이름을 알린 그는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평가 받는다. 페스티벌을 제일 처음 창립했던 인물이 바로 번스타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였던 틸슨 토마스가 예술감독 직을 이어간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는 비교적 쿨하게 지휘를 하는 편이었다. 포디움 위에서 감정적 동요가 크지 않아 보인다는 말이다. 바람 때문에 악보가 넘어가는 당혹스러웠던 야외공연 상황 속에서도 선비처럼 고요하게 지휘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한 달간의 페스티벌 기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우연히 참관했던 콘서트 현장에서였다. 외부 초청 악단 자격으로 삿포로를 찾은 일본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NHK교향악단의 공연이었는데, 이들이 들고 온 곡은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이었다. '그레이트'라는 부제가 달린 이 곡은 28세의 청년 슈베르트가 '합창' 교향곡을 쓴 베토벤으로부터 영향으로 쓴 걸작이다. 그러나 작곡가 생전에는 연주 기회를 찾지 못해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연주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 곡은 여러 측면에서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곡이 아니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고 제목에 걸맞은 충분한 인원으로 연주할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 곡이다. 연주시간 1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길이 때문에 큰 판을 어떻게 짜서 끌고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의외로 NHK교향악단의 연주로 접했던 '그레이트' 4악장은 어마어마한 폭풍과도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널찍한 무대에 빼곡하게 들어 찬 멤버들이 꼼꼼하게 구현해 낸 성실함과 치밀함 때문에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서 느낄 법한 장대한 사운드가 턱밑까지 다가와 목숨을 요구하듯 긴장을 폭발시켰다.



지난 8월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다시 만난 '그레이트'는 기대에 미치지 못 했었다. 기술적인 부분을 다듬어 무대에 올린 사운드는 마치 갓 수확한 감처럼 겉은 단단했을지언정 그 맛은 제대로 오르지 않아 입안을 뱅뱅 돌았다. 게다가 50명이 채 되지 않는 적은 않은 인원으로 연주하다 보니 뜨겁게 달아올랐을지언정 광풍으로까지 자라나지 못 하고 요란한 모래바람과 같은 씁쓸함과 아쉬움만 남겼다.

'그레이트'는 긴 길이에 끝없는 반복 때문에 지루한 곡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슈베르트는 그의 대표작을 '미완성' 교향곡에게로 넘겨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NHK교향악단의 '그레이트'는 슈베트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훌륭한 연주는 음향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청명하고 또렷한 시선을 제공한다. 이런 연주라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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