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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어라

[배명복 시시각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르디아스는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난 덕에 프리기아의 왕이 됐다.
그 기념으로 고르디아스는 신전 기둥에 마차를 꽁꽁 묶어놓고는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신탁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원정길에 이곳에 들른 알렉산더대왕도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검을 뽑아 단칼에 매듭을 끊어버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촉발된 국정의 혼란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107일 만에 내각이 총사퇴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고, 난국을 수습해야 할 청와대 비서진도 일괄 사표를 냈다.
6·10항쟁 21주년 기념 촛불집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해 출범 석 달을 갓 넘긴 이명박 정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광화문 네거리에는 컨테이너 장벽까지 등장했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인적쇄신을 단행한다지만 사태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우려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 사태에 편승해 민주노총은 총파업에 들어갈 기세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가 총리가 된다고 사태가 진정될 것 같지도 않다.


이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번 사태의 핵심인 쇠고기 협정 재협상 문제의 매듭을 끊어버리라는 것이다.
4월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정을 아예 없던 것으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협상하라는 것이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다.


어떻게든 재협상만은 피하려다 보니 정부는 찔끔찔끔 밀리고 밀려 이 지경까지 왔다.
대통령은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화로 사정을 하고, 당·정·청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 추가 협상을 지시했다.
민간의 자율규제를 정부가 보증하는 방식의 추가적인 보완장치를 통해 실질적인 재협상의 효과를 거두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요구는 요지부동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80%의 국민도 재협상을 원하고 있다.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서는 시위를 잠재울 방법이 없다.
편법이나 꼼수로 해결할 상황이 아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는 심정으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


우선 대통령은 TV 토론이든 기자회견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왜 자신이 재협상만큼은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것인지, 재협상을 하게 되면 국익에 어떤 손상이 오고, 미국 수출에는 어떤 차질이 생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떻게 되고, 국가의 위신과 신인도는 어떻게 되는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미국이 재협상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그래도 시위가 잦아들지 않는다면 재협상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태는 국가의 안위가 달린 외교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해석에 따라 못할 것도 없다.
쇠고기 문제 때문에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은 해외토픽감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1968년 대대적인 학생 시위와 총파업 사태로 난국을 맞은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이듬해 4월 지방행정 개혁과 상원 개편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개헌안이 부결되자 드골은 바로 다음날 사임하고 낙향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지금 기로에 놓여 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을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정치생명을 거는 것만이 이 난국을 수습하는 길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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