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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귀암 회고전]“눈 덮인 산길, 소년처럼 뛰어 다녔으리라”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7/11/04 11:30

사진=故 최귀암 화백(위)

11월1일 오프닝 파티에서 남편의 마지막 유작 옆에 선 최은선씨.(아래)

故 최귀암 화백 회고전 여는 ‘화가의 아내 최은선’
'그를 보낸 지 1년8개월, 그리움을 저 산에 묻다'

지난해 2월 12일 남편은 주검이 된 채 돌아왔다.
항상 혼자 산행을 떠나길 좋아했던 남편이었기에 그때마다 마음 졸이며 기다려 왔다.
그날도 그저 여느 때처럼 걱정하며 기다렸고, 늦어지자 화가 났고, 날이 밝자 두려워졌다.
2006년 2월 11일의 그라우스 마운틴 산행은 그렇게 남편의 마지막 길이 되고 말았다.


그는 산을 좋아했다.
산에 오르면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가만가만 걷지 못하고 천방지축 뛰어 다녔다.
그날도 눈 덮인 산길에서 소년처럼 뛰어 다녔으리라. 그리곤 그가 사랑하던 산속에서 기쁘게 죽어갔으리라.

많은 사람들은 쉰이라는 젊은 나이에 간 것이 너무 아깝다며 위로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그림을 업으로 삼으며 그릴 수 있었고 그 좋아하는 산속에서 생을 마쳤으니 어찌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래도 25년을 함께 산 남편을 보낸 마음은 갈갈이 찢기는 듯했다.
그의 몸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그토록 사랑하던 산 속에 뿌려졌다.


‘자연에서 온 자,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그대 산 자락 바람결 되어 나뭇가지 스치고, 차가운 계곡 물 속 굽이굽이 흘러라. 밤이면 달빛과 별빛 함께 노래하고, 아침이면 찬란한 태양을 맞이하리라.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베게 삼아, 저 숲을 병풍 삼아 편안히 잠들라.’

그를 산속에 뿌리고 오던 날, 마음은 편안했다.
생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아름다운 산속에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온 자리로부터 그가 갈 자리로 보낸 것 같아 평화로웠다.


<하늘, 나무, 물빛을 보며 행복해 했다>

그는 혼자 산길을 걸으면 너무 자유롭고 그 아름다움에 빠진다고 말했다.
항상 갈 때마다 바뀌어 있는 산의 색깔에 매료되는 사람이었다.
무리와 산행을 떠났다가도 결국 혼자 산에 오르며 하늘과 나무와 물빛을 보며 행복해 했다.
그리곤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산으로 홀로 떠난 날이면 항상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염려됐다.


그래서 그의 추상화엔 밴쿠버의 자연이 주는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림에서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자신의 모든 것, 신명을 바쳐 그림을 그렸던 사람, 그 그림을 아내로서 더 깊이 이해해주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못내 아쉽다.


그를 보낸 1년 8개월은 정말이지 긴 시간이었다.
그가 떠난 자리는 무척 컸다.
일년에 두 번은 두 딸과 함께 가족여행을 즐겼고, 그래서 셋이 떠난 여행길에서 느껴지는 빈 자리는 너무 컸다.
성장한 두 딸은 되려 나를 위로했다.
아빠는 지금 여기 없지만 더 좋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거라면서...

남편은 밴쿠버를 너무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결혼 후 15년을 토론토에서 자리잡고 살던 우리는 서울에서 토론토 가는 길에 경유해 여행했던 밴쿠버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초여름의 밴쿠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3박4일 밴쿠버 여행을 끝내고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밴쿠버로 이사올 것을 결심했다.


산을 좋아하던 남편은 산이 있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어했다.
토론토에서 15년을 살면서 자리 잡은 약국과 갤러리를 모두 정리하고 밴쿠버로 이사 왔다.
모두들 미쳤다고 했다.
토론토의 시부모님의 반대도 심했지만 눈에 아른거리는 밴쿠버로 올 수밖에 없었다.
BC주에서 다시 약사 시험을 봐야 했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그림을 통해 위안과 평화, 사랑을 느꼈으면>

남편을 보내고 난 후 약국 두 곳을 경영하며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정신 없이 보냈다.
6개월 동안은 잊기 위해 체력이 감당 못할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다.
미국에서 언니가 와서 함께 머물며 큰 위안이 됐고 친구와 이웃들이 위로하며 많이 도와줬다.
나와 두 딸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고 아픔을 긍정적 힘으로 바꾸려고 애썼다.


힘겨워 할 때마다 둘째 딸이 나를 위로했다.
우리 말고도 사랑하는 사람을 더 힘들게 떠나 보낸 사람들은 너무도 많을 거라면서…

이제 남편이 유작으로 남긴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애초에는 1주기를 맞아 회고전을 열 생각이었지만 포트무디의 블랙베리 갤러리의 경우 1년 스케줄이 미리 잡혀져 있어 11월 1일에서야 회고전을 열게 되었다.


그림에 문외한이라 블랙베리 갤러리의 큐레이터 린다 베이커가 모든 준비를 나서서 도맡아 주었다.
이번 회고전에는 모두 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수익금은 대부분 포트무디 미술 장학금과 한인 장학재단으로 기증될 예정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작품들뿐이고 아내로써 최귀암 장학금을 영구히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그림을 보면서 사람들이 위안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화가 최귀암의 그림을 가지고 보고 즐겼으면 하는 게 나의 소망이다.
회고전을 여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귀암 화백 회고전>
일시: 11월 1일-25일(오프닝 리셉션 11월 1일 오후 6시-8시)
장소: 블랙베리 갤러리(포트무디 아트센터, 2425 St.포트무디)
문의 604-417-4818
전시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월-목), 오전 10시-오후 5시(금.토), 정오-오후 4시(일요일)

최귀암 화백은...

1954년 경남 통영 출생
1974년 고려대학 공학부 입학
1975년 캐나다 이주
1981년 온타리오 미술대학(Ontario College of Art) 졸업
1988년 갤러리 프러스(온타리오 옥빌소재) 개인전
1994년 유나 화랑(서울), 갤러리 서미 개인전
2001년 현대 화랑(서울) 개인전
2002년 보아화랑 개인전(포트 무디)외 개인전 15회 및 단체전 다수
2000년 23회 밴쿠버 BC(British Columbia)미술전 최우수 창작상 수상

글.사진=이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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