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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육군신병 행군 폐지 논란을 보고

대한민국 육군이 신병 훈련에서 20㎞ 완전군장 행군을 없애는 걸 시범 운영하고 있다. 육군은 6월까지 신병 훈련에서 행군을 한 집단과 하지 않는 집단의 체력·전투기술 등을 측정해 행군 폐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는 군 복무 기간이 줄며 신병의 기초군사훈련도 축소해야 하는 데 따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행군 폐지에 반대한다. 30년 전 6월 말 공군 학사장교 소위 임관을 한 달여 앞두고 2박 3일 일정으로 80㎞ 행군을 한 적이 있다. 뙤약볕에 완전군장을 하고 하루 30㎞가량을 걷는 건 고역이었다. 딱딱한 군화를 신고 걷다 보니 발에는 물집이 여기저기 잡혀 하루 행군을 마치면 소독한 바늘로 물집을 터트려야 했다. 땀에 절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수통의 물만 들이켰다. 하지만 80㎞ 행군을 마쳤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힘든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신병들에게 20㎞ 완전군장 행군은 훈련병에서 군인으로 성장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힘들지만 극복했을 때 희열을 느끼게 하고 군인 생활을 잘 해내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앤절라 더크워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 '그릿(Grit)'에서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통해 탁월할 성취를 이룬 사람의 비결은 재능이 아니라, 그가 그릿이라 부르는 열정과 끈기의 조합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어려운 일에 도전해 성공한 경험이 그릿을 키워주며, 그릿이 얼마나 있느냐가 개인 또는 조직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밝혔다.

'그릿'에서는 개인만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국가도 열정과 끈기를 배양하는 문화를 가져야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더크워스 교수는 핀란드가 2차 세계대전 중인 1939년 3배의 병력, 30배의 전투기, 수백 배의 탱크를 보유한 소련군의 침공에 맞서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핀란드인에게는 무모할 정도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핀란드는 이웃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과 달리 소련에 흡수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신병들에게 20㎞ 완전군장 행군은 그릿을 길러주는 좋은 훈련이다. 도보로 이동하니 속도가 느리고 체력 소모가 크지만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열정과 끈기를 키울 수 있다. 2020년부터 현역병 복무 기간이 18개월(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2개월)로 짧아지며 현역병을 강한 군인으로 양성해야 할 필요는 커졌다.



신병 훈련에서 행군을 제외하려는 이유가 현역병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심각한 문제다. 군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언제든 전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군복무 시절 외쳤던 '훈련에서 흘린 땀, 전장에서 피를 아낀다'는 구호는 불변의 진리다. 젊은이들이 군 복무 기간을 허송세월하지 않고, 자신과 나라를 위한 귀중한 시간이 되도록 만들 책임이 정부에 있다. 그러려면 한편으론 현역병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다른 한편으론 강한 훈련으로 정예 군인을 양성해야 한다.

군대뿐 아니라 전 사회가 열정과 끈기가 넘쳐야 미래가 밝다. 젊은이들이 공무원·교사·의사 등 안정된 직업에 몰리는 건 문제가 있다. 정부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끈기를 북돋우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젊은이들의 도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대폭 줄이고 실패를 용납해야 한다. 도전하지 않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정재홍 / 한국 중앙일보 콘텐트제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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