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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설거지

가정에서 주부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 중 하나는 식사 후 부엌 설거지일 것이다. 그래서 외식은 부엌일에서 해방되는 날이어서 밖에서 먹는 날은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풍속이 남편들이 부엌일 거들어 주는 것은 보통이고 설거지는 남편 몫이 되는 가정이 많다. 60여 년 전 한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들은 미국 유학파 교수님의 훈육이 생각난다. "여러분은 앞으로 결혼하여 살 때 부엌 설거지는 남편이 꼭 도와주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교수님은 선진 교육을 받고 온 엘리트이고 선민의 선비 대접을 받는 존재였다. 이 몸도 어쩌다가 미국으로 생활터전을 옮겨 온 후 맞벌이 부부생활에 부엌 설거지가 몸에 밴지 오래이다.

부엌과 식탁이 한 공간에 있는 서양식 주택과 달리 한국의 재래식 주택구조는 정지간(부엌)이 있어 사내아이가 부엌 칸에 들어가면 불알 떨어진다며 할머니들이 밀어 내던 시대를 살아온 세대에겐 부엌설거지란 참으로 어색한 가사임에는 틀림없다.

60년대 가난한 섬마을에서 성장하여 어렵사리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후 신학교 교수로 한국의 유명한 J목사님도 남편들의 부엌설거지를 권장하신 녹음 테이프를 오래 전 들은 적이 있다.



이젠 결혼한 아들들도 부엌 설거지를 며느리 제쳐두고 척척 해내는 아들 녀석들의 꼬라지를 쳐다보는 어미의 눈꼬리와 심기는 매우 불편하여 진다. 자기의 사내자식을 부려먹는 며느리가 심히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딸자식을 둔 어미는 부엌 설거지를 도와주는 사위가 그토록 대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자기 남편이 하는 설거지는 미안한 기색 없이 받아 주는 시어머니는 자가당착이요 이기주의의 표상이다.

나도 한 마디 안 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셔 나의 부엌설거지를 보시면 똑 같은 심정일 것이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웃어 본다.

아무리 비누칠, 물행주질, 흐르는 물에 헹구어내 말린 식기 이건만 가끔 식기에 붙어 있는 음식 찌꺼기를 귀신같이 잘 찾아내는 안 사람의 지적은 옛날 어린 소녀 가정부를 닦달하는 표독한 주인마님의 질책이다. 지금은 한국군 식사도 단정한 식판에 위생적으로 영양 식사를 하지만 필자가 한국군 졸병으로 근무하던 1960년 초 전방의 급식구조는 미군들이 사용하는 손잡이가 길게 달린 야전 반합에다가 밥 한 주걱 퍼주고 된장국을 밥 위에 끼얹어 주는 식사였다. 그리고 항상 배가 고픈 그때 그 시절이었다. 영구 막사가 없었던 전방의 야전 막사에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던 말단 중대에는 자기가 먹던 식기는 흐르는 도랑물에 헹구어 식당에 반납하면 하사 계급의 취사반장이 눈을 부라리고 검사를 하며 퇴짜를 놓았었다. 어쩌다 밥풀떼기가 붙은 접시를 들고 흠집 잡는 마누라의 질책은 '취사반장'이나 '주인마님'의 호통을 듣는 신세가 된다.

세월이 흐르니 임신과 출산을 제외한 남녀의 역할도 변하여 구분이 없어진 지 오래이다. 부인의 연봉이 높으면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책임진 가정도 많다는 보도도 있다. 부엌일을 도와주는 남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진 주부라면 그 가정은 필히 행복한 가정일 것이다. 세상의 주부들이여 남편이 부엌설거지를 도와주면 그를 하인으로 대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할 지어다.


윤봉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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