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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돈과 행복, 그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밀접함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에 초연할 수는 없다. ‘나는 돈에 초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들을 그래서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이거나 아니면 위선자들이다. 사내의 삶은 쉽지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그것은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가장은 이미 가장이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돈이 있어야 밥을 먹는다. 우리는 구석기시대의 사내들처럼 자연으로부터 직접 먹거리를 포획할 수는 없다. 우리의 먹거리는 반드시 돈을 경유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 밥은 끼니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孔孟老莊)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의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돈 없이 입만을 나불거려서 인의예지이며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이룰 수 있을까. 아니다.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엄연한 현실이다. 누구나 돈을 좋아한다. 우리는 ‘쩐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 돈은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돈은 물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돈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다. 짐멜은 <돈의 철학> 에서 돈을 추상적이고 보편타당한 매개 형식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개인과 세계를 이어주는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에 나왔던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은 제목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축소지향’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인류 문화 자체가 축소를 지향하지 않았나 싶다. 종교를 놓고 봐도 그렇다. 작은 종교를 지향하는 게 트렌드이다. 큰 종교가 우주적 신을 믿는 전통 종교라면, 작은 종교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작은 종교는 돈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로 들어올수록 큰 종교 대신 작은 종교를 신봉한다. 특히 유대인들은 ‘돈은 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라고 부른단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하늘에 계신 야훼는 너무 멀리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멀리 있으면 믿기 힘들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계신 신(돈)은 너무 가까이 있다. 손만 넣으면 있다. 눈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다. 지폐 다발을 만질 때의 스킨십을 아는가. 모든 스킨십의 궁극적 경지는 돈을 만질 때 오지 않을까! 이처럼 가까이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물신(物神)’이야말로 너무 좋은 황금신 아닌가!

돈은 선(善)을 따라 움직인다. 돈은 돌고 돈다고 해서 돈이다. 영원한 돈도 없고 그냥 소멸되는 돈도 없다. 돈은 살아서 나의 의지에 따라 몸과 영혼을 부유하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정의로운 돈은 사람을 살린다. 돈에는 영적 생명력과 힘이 있다. 정당하게 번 돈은 행복과 행운의 길을 열어주고, 좋은 일과 유익한 일에 사용하면 사람을 얻고, 요령과 악으로 번 돈은 악령이 붙어서 원한을 만들고, 악인에게도 돈이 갈 수는 있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돈은 자신을 존중하고, 선한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이동한다. 돈은 따뜻한 심장이 있다. 돈으로 군림하고, 돈으로 장난치고, 교만한 짓을 하면 돈은 말없이 달아나거나 돈만 밝히는 놈끼리 싸우도록 뒤에서 조정한다. 악마는 위인을 타락시키는 마지막 선택으로 돈을 이용한다. 악마가 쳐둔 돈의 덫과 유혹에 걸리면 명예도 신용도 잃는다.

현실은 우리가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돈이다. 옷이 날개이듯이 나를 바깥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돈이다. 내가 비록 못생겼어도 미스 코리아를 사들일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못생긴 내 얼굴에 놀라기보다는 가장 아름다운 부인을 가질 수 있는 내 돈에 경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기적이고 사악하고 양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이 존경 받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나 역시 존경 받을 수 있다. 나는 무능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돈은 나의 무능력을 그 정반대의 것으로 바꿔놓지 않는가.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돈은 ‘전도(顚倒) 시키는 권력’으로서 “진실을 거짓으로, 종을 주인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어리석음을 오성(悟性)으로, 오성을 어리석음으로 전환시킨다”고 단언한다. 돈은 분명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악신이다.

이 세상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많지만, 돈 없이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돈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자유다. 돈이 충분치 않으면 돈을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지만, 돈이 많으면 일을 하건 안 하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자유, 여행할 자유, 좋은 환경에서 살 자유… 모두 돈이 주는 자유다. 돈은 힘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돈이 좋다. 다만 지금 돈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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