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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네 개의 관계가 빚는 예술

손가락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입씨름을 한다. "사람들이 잘한 일에는 나를 척 내밀잖아." 엄지가 우쭐해서 말했다. "요즘같이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세상에는 내가 필요하지 않겠어?" 검지가 몸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잘난 체를 한다. "그래도 키는 내가 제일 크잖아. 자리도 가운데고." 중지가 좌우를 내려다보며 거만을 떤다. "결혼반지를 어디다 끼는지 잘 보라고." 약지가 허리에 두른 결혼반지를 내보이며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이 약속할 때 나를 걸고 하잖아. 내가 얼마나 중요하면 그렇게 하겠어." 새끼손가락은 허리를 접으며 의기양양 허세를 떤다. 다 듣고 있던 손바닥이 한마디 거들었다. "꼼짝들 말고 나에게 붙어있기나 해!"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아무리 모양이 빼어나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손가락이다. 손가락이 손바닥 안에서 함께 춤출 때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화장도 하고, 옷도 입고, 빨래도 하고, 젓가락질이며 요리도 하고, 악기 연주며 운동도 하고, 운전도 하고, 연필도 잡을 수 있다. 손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온종일 세도 손과 손가락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라는 문화 인류학자는 "손은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네 개의 관계로 이루어졌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손이 하는 일들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결과가 아니라 네 개의 관계가 빚는 예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사람에 주목한다. 사업체에는 고용주가 있고, 종업원이 있고, 손님이 있다. 저마다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며 대우만 받으려고 한다면 그 사업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가족 구성원들은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를 기초로 한 여러 관계로 얽혀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만 주장한다면 건강한 가정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도 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종업원 없는 고용주가 있을 수 없고, 손님 없는 주인도 의미가 없다. 읽어주는 이 없는 저자의 글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겠는가? 존재는 관계로 증명된다. 아니 관계가 존재를 만든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아니라 네 개의 관계로 구성된 손에도 주름이 팬다. 그래도 여전히 손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주름 잡힌 손이지만 손가락 사이를 연결하는 사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이 네 개의 관계가 빚는 예술이라면, 우리의 삶은 수많은 관계가 빚어내는 예술 아니겠는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본다. 참 여러 사람이 있다. 아니 여러 관계가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겠다. 그 관계가 나를 존재케 해 주니 말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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