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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에게 쓰는 반성문

엄영아 / 수필가
엄영아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10/3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0/30 18:02

어제 저녁 밥상에서 생긴 일이다. 정성껏 담근 깍두기를 먹으며 "깍두기 맛있죠?" 물어보았건만 대답이 없다. "그냥 조용히 먹어." 두 번씩이나 물어보고 받은 대답이 고작 이렇다. 어! 이건 아니지. 이건 질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화가 나서 체할 것 같아 들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남편의 말에 낙담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힘들다. 자존심에 난 작은 상처가 유난히 아프다. 섭섭한 마음이 공처럼 커져 가슴이 답답하다.

남편의 성격은 부드럽지만 말수는 너무 적다. 처음엔 그것이 매력적이었지만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도 몇십 년 살면서 해마다 말수가 조금씩 더해져 견딜만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도 그렇게 말해 놓고는 시간이 지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친절하게 말을 건다. 이해가 안 된다. 마음을 넓혀 이해해야 하는데 나는 오늘 그러지 못한다. 차갑고 융통성이 없는 말을 하는 남편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남편의 말 한마디 때문에 화가 난 내 입술이 설날 복주머니만 하다.

50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오직 사랑 하나 때문에 살아왔겠는가. 가슴에 녹아내려 온몸 구석구석 스며든 그 정 때문이지 하면서도 속이 상한다. 어찌 그리 차갑고 생각 없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더 살아야 친밀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대화가 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살아야 서로가 말의 귀소본능을 깨닫고 따뜻한 말로 존귀하게 여기며 말을 하게 될까. 삶에 산들바람만 불어주길 바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말의 온도쯤 생각해 보고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남편의 성격 그대로를 받아주는 것이 수천 길, 산 넘고 물 건너, 동과 서에서 만나 맺어진 인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독특하게 타고난 남편의 성품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고 머릿속으로는 매일 생각하면서도 현실에 부딪히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나 자신과의 갈등이 힘들다.

속이 불쾌한 뒤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어느 때가 되면 성숙하여 불만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렇지, 죽을 때까지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게 삶이지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마라톤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신발 속의 모래 한 알이라고 말하듯이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은 작은 말 한마디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며 말을 친절하게 하는 것은 덕이다. 인내와 선한 성품으로 자신을 다스려 말하는 언어의 품격은 막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고쳐지지 않아 고민하는 부부의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의 삶이 서로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간에 무례함을 잘 파악하여 성숙된 가슴을 주고받으며 살아야겠다. 스스로에게 다시 타이르며 잠이 든다.

동터 오는 해를 보며 산책길에 나섰다. 석류나무가 빨간 꽃잎을 농염하게 피운다. 늘 듣는 새소리인데 오늘은 더 고운 소리로 들려온다. 이 좋은 시절에 후회 없도록 행복한 오늘을 살아야 할 것 같다. 부부 사이라도 친밀감은 죽을 때까지 연습이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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