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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잊히지 않는 두 친구

박유선 / 수필가
박유선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11/0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0/31 20:40

고운 모습의 초로의 키 큰 여인을 보고 깜짝 놀라 "혹시 정희씨?" 하니까 "미안합니다만 아닌데요"한다. 어쩌면 그 옛날 친구 정희와 그리도 꼭 빼닮았는지. 큰 키에 호리호리하고 선한 눈매까지 빼박은 모습이라 그만 실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정희가 전학 왔다. 난 그 아이가 외로울 것 같아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망서리며 '나는 너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메모지를 슬쩍 건넸다.

정희와 같은 중학에 진학해 얼마나 신났던지. 어느날 방과 후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우산을 건네주었던 정희 아버지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까지 꽤 먼 길을 딸 마중왔는데 그만 길이 엇갈려 그냥 돌아가는 중이란다. 집 방향이 같아 함께 걸으며 얼마나 감사하던지 지금도 우산하면 때론 생각난다. 그 시절엔 무슨 멋인지 어지간한 눈비엔 그대로 다녔다.

정희는 그후 언제부턴가 이유도 없이 내게 말을 안 한다. 노력은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나 실수는 없는데 싶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친구는 다른 학교로 갔다.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오해가 있으면 풀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다시 만나지 못한 친구는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떻게 지내는지?

여고시절 찬구라는 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친구 아버지는 은행의 높은 분이다. 내 편견인지는 모르나 찬구는 발레를 하기엔 어딘지 조금은 통통하다 싶은 몸매였다. 얼굴 피부는 검지만 눈은 아주 크고 또렸하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찬구는 내게 속내를 내보이며 '다 큰 계집애가 어디서 가랑이를 번쩍번쩍 치켜드냐, 안 된다' 하는 할머니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며칠씩 울고불고 단식투쟁해서 학원비를 타낸단다.

어느날 미국 우리집에 놀러 온 찬구는 내 수집품을 보고 미국인 지인에게서 받은 내가 제일 아끼는 블라우스를 달라고 했다. 나는 여러 나라 지인들로부터 선물받은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나 역시 좋아하는 것인지라 줄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 친구 역시 그런 후 어느 날부터인가 입을 봉했다. 예전에 그랬듯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된다. 실수한 기억도 없지만 잘못한 것도 없다.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무용학과에 입학한 찬구는 한 달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더군다나 나와 그 친구는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 채 말도 안하고 그렇게 영원한 이별을 하다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내가 잘못했다. 왜 그러냐고 더 깊이 물었어야 하는 건데. 혹 내게 잘못이 있다면 결자해지라고 내가 풀었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가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인생이 이렇게까지 허무한 것인가 생각을 곱씹었다. 이젠 누구와 싸우지도, 싫은 소리도 안하고 아옹다옹 하지 않으리라 속다짐했다. 여물지 않은 나이에 받은 충격은 그만큼 컸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제눈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또 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 젊은 날 모습이 눈에 선하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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