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시로 읽는 삶] 바보 엄마

싸리재 너머/ 비행운 떴다// 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 호미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남양댁/ 소리치겠다//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 우리나라 비행기는/ 전부 진평이가 몬다

-윤제림 시인의 ‘공군소령김진평’전문

세상 엄마들은 바보 아닌가 싶다. 아니 아이를 갖고부터 조금씩 바보가 되어간다. 아니 바보를 자처한다. 자식을 낳고부터는 우주의 중심이 제 아이가 된다. 제 아이를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가기를 바란다.

자식 일에 관한 한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객관적 입장을 취한다 해도 손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평가는 늘 부풀려지기 일쑤다.



더러 기울기가 너무 치우쳐 자식의 앞날을 그르치기도 하겠지만 어쩔 것인가. 어미라는 족속들은 청맹과니인 것을. 아니라고 부인하려 해도 나도 그런 엄마다. 나와 진평이 엄마뿐이겠는가. 철수 엄마도 영희 엄마도 매일반이다.

아들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첫 근무지인 일본에 있을 때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탔다. 항공모함에 대해 알아보다가 그 규모와 역할에 놀란 나는 그 큰 배를 아들이 혼자 타고 다니는 것 마냥 뿌듯했다. 태평양을 혼자 지키는 것처럼 대견해서 좀 으스대기도 했다.

진평이 엄마처럼 세상의 엄마들은 허풍쟁이다. 자식의 일에 관한 한 점수가 후하다.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그런 엄마들이 있어 좀체 비켜설 곳이 없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있어 깊은 숨을 몰아쉴 수가 있을 터이다.

시가 주는 웃음과 따뜻함은 모든 어미의 자화상이다. 어미들의 푼수 같은, 그래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반은 아름답고 반은 일그러진 모습은 어미라는 이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 사실이기도 하다. 시인이 전하는 유머는 웃음과 안도와 격려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작고하신 수필가 박연구 선생은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아들이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면서,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마냥 대단하게 여겨주셔서 글을 쓸 수 있었고, 병마로 절망하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어미로 살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은 지난한 과정이기는 하지만 더 없이 다행인 것은 지치지 않고 사랑할 대상이 있음이다.

엄마들은 사실 바보는 아니다. 바보인 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손이 안으로 굽기로 주관적 평가만을 하겠는가. 다만 바보의 눈으로 자식에게 관대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의 능력이나 존재가치가 칼같이 평가되고 여지없이 가늠되는 세상 속에서 넉넉한 품을 가진 지지대가 하나는 있어야 하겠기에.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을 만든다. 진공포장을 해서 차곡차곡 담는다. 가끔 아들에게 보낼 반찬을 만들 때는 무슨 제의를 치르는 것 같은 심정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들이 한인 마켓을 가려면 두 시간은 걸린다며 엄마 반찬이 먹고 싶다는 한 마디에 노선을 사수하는 사상가처럼 나는 확신에 찬다. 내 손으로 해 먹인다는.

무작정 사랑을 퍼 줄 상대가 있다는 게, 무작정 사랑을 구해도 되는 대상이 있다는 게,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축복 아니고 뭔가. 사랑도 보고 배운 대로 하는 대물림이다. 어머니에게 받은 것을 자식들에게 주는 건 헌신이랄 것도 희생이랄 것도 없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내리사랑의 마음일 뿐이다.


조성자 /시인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