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안개를 지나며
지금 우리보다 아는 것이 적었던 옛날 옛적에는 모르는 것이 많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훨씬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는 아무 소용 없는 짓으로 그것에 대응하려 했다. 공연히 돌탑을 높이 쌓아 놓기도 했고 귀한 음식 잔뜩 차려 놓고 산과 들판에 뿌리기도 했고 효녀 심청을 용궁까지 던져 넣기도 했다. 천둥 번개가 무엇이고 일식 월식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이며 무지개가 어떤 자연 현상 인가를 알게 된 우리는 옛적에 그런 행위를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모르는 것이 아직도 많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불안이 여전히 우리 옆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이 불안과 무서움에 삼켜져서 멀쩡한 사람들이 멀쩡하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되는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미국 남부 넓고 넓은 대평원에 자리한 마을에 선장 출신의 사내가 들어선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자기네 지역의 크고 넓음을 자랑한다. 그리고 함부로 혼자 황야에 나서면 길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 선장 사내는 어느 날 홀연히 혼자 말을 타고 주변 구경에 나선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가 돌아오지 않자 사람들은 구조대를 보내고 하면서 법석을 떤다. 그 와중에 선장 사내는 태연한 얼굴로 돌아온다. 나침반과 지도가 있고 별자리가 있는 한 망망한 바다에서 길을 찾던 그에게는 좀 넓은 대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길을 아는 사람은 길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치 길을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어릴 때 보았던 어느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에는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언제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커다란 소리만 들려도 피난 보따리 싸야지 하는 반응이 늘 있었다. 그래서 전쟁과 같은 환란이 일어나면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비밀의 고장이나 비상한 대책 같은 것을 절실히 바라게 되었다. 알 수 없는 그리고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도망가는 길을 열심히 찾게 되고 부작용으로 이것이 그 길이다 소리치는 엉터리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그런 길은 있지 않았고 오히려 용기를 내어 그 무서움을 넘어 설 때 나아갈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개가 겁나는 것은 앞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 길은 거기에 있다. 해가 떠오르면 사라지는 안개 뒤에 그 길이 있음을 알면 안개 사라지듯 무서움도 사라지고 인내하게 된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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