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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불교의 '거듭나기'

"스님, 깨달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니 저도 이참에 한번 깨달아보고 싶네요."

"허허, 그래요? 어디보자, 신통한 방책이 있나? 그래, 큰스님이 저에게 늘 말씀하셨지요. '즉심시불이니라'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뜻이지요. 노 보살님도 이 마음이 안녕하신지 늘 문안드리며 사십시오. 언제고 기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옛날 어느 절 아랫마을에 환갑을 넘긴 할머니 한분이 홀로 사셨다. 외로움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텃밭을 가꾸며 소일하면서 그저, 절에 다니며 먼저 떠난 영감님의 극락왕생과 대처로 떠난 아들놈이 별 탈 없이 살기만을 빌었다. 그렇게 부처님만 믿고 의지하는 일이 낙이고 위안이 되었다.

그럼에도 겉과 달리, 크고 작은 곤란과 불안, 근심거리가 쉼 없이 들락거리며 힘들게 했다. 가끔 해 뜨니 낮이요 달뜨니 밤인 줄만 알고, 허리가 꺾기도록 산 세월을 돌아보며 그 덧없음에 한숨짓곤 했다.



깨달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데 글도 못 깨친 주제에 무슨 수로 깨칠꼬? 망설이다가 스님께 여쭤본 터이다. 마음 밭에 눈을 주게 된 것이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천금 같은 금구가 아니던가. 돌아오는 길에 하마 놓칠까, 염불하듯 즉심시불을 입에 물고 오다가 심즉시불로 꼬이다가, 아뿔싸!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그만 까마득해져 버렸다.

기를 쓰고 더듬었다. "무슨 시불이라 했는데..." 혀끝에서 맴돈다. "집심시불? 아이고 그렇지, 짚신시불!"

'짚신을 엮다보면 부처가 된다는 말씀이렷다.' 나름대로 눙치고는, 막무가내 그날부터 할머니는 짚신을 삼기 시작한다. 묵묵한 삼년이 지나고 내처 석삼년이 지나자, 멀리 읍내까지 알아주는 짚신 장인이 되었다.

여전히 짚신을 삼고 있던 어느 날, 문득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돌더니, 끝내 메마른 볼을 타고 내렸다.

당신 깜냥에도 '짚신시불'이라는 말이 의아하긴 했지만, 무식한 내가 무슨 당찮은 알음알이를 내나 싶기도 하고, 또 '뭐시 중헌디?' 싶어 자나 깨나 돌부처처럼 틀고 앉아 짚신만을 삼아왔다.

짚신을 삼다보니 초장엔 잡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한 생각을 쫒아가다 보면 괴로움만 더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종래엔 거품처럼 일었다 꺼지고 마는, 한낱 '허공에 못질'일 뿐이었다.

한 생각 일어나면 일어난 줄만 알면 그만, 놔버리면 제풀에 사라지고 마는 무상(변화)과 무아(실체의 부재)의 도리를 성글게나마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집착'이란 차꼬에서 풀려나자 잦아든 평정이었다.

글을 몰라 부처님의 말씀을 읽을 줄도, 들어도 어려워 뜻을 몰랐으나, 아, 이것이 '부처님 마음'이구나. 이른바 법열에 겨워 흘린 눈물이었다. 거듭남이었다.

할머니는 오늘에야 비로소 짚신을 삼고 있었다.(선가 설화를 각색)

musagusa@naver.com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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