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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물의 소리, 사람의 소리

코로나19의 망령이 나라를 덮치자 산과 강, 바다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산은 근처에 있으면 크게 우뚝하고, 멀리 있어도 높게 솟아 손짓한다. 강도 여전히 구불구불 그 아름다운 자태로 율동하고 있을 터이고, 바다도 언제나처럼 드넓게 펼쳐져 끊임없이 출렁이고 있으리라. 비 개자 뒷산 광교산에 올랐다. 서늘한 기운이 바짝 졸은 영혼을 무던히 맞아주었다. 땅은 질퍽하고, 나목들도 촉촉히 젖어 있었으며 바위들도 아직 물기를 머금고 띄엄띄엄 박혀있었다. 이따금 산새들이 적막을 깨며 존재를 알렸다.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깊어지는 맑음의 심연에 흠뻑 취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오르자 숨이 찼다. 잠시 서서 쉬며 아래를 내려다 보니 나무들 사이로 아파트 군이 빽빽하게 운집해 있다. 저렇게 조밀한 데서 어떻게 살고 있나 싶었다. 가쁘게 차오른 숨소리에 도시의 소음까지 묻혀 청정한 산 속에 뿌려지는 듯해서 고개를 숙였다.

숨결이 잦아들었다고 느껴질 때 어디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귀를 귀울이고 들으니 계곡 쪽에서 올라오는 조잘거림이었다. 길이 나지 않은 가파른 비탈을 간신히 내려가 도랑을 만났다. 낙엽에 덮여있는 골짜기에 빗물이 모아져 자작거리다가 아래로 내려오며 가는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졸졸졸 흐르다가 바위로 층이 생기자 아래로 떨어지면서 작은 폭포를 만들며 음폭을 키우고 있었다.

물은 다소 탁했지만 소리는 맑았다. 꾸미지 않은 천연의 음률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들으니 고저장단도 구분이 됐으며, 강약도 섞이어 있고, 나름 그럴 듯한 화음을 연주하고 있었다.



물리학적으로 소리는 물체가 서로 맞닿으면서 생성되는 음파이다. 물소리도 물이 인력에 의해 끌어내려지거나 밀려 내려오면서 흙이나 돌, 또는 저희들끼리 부딪히면서 내는 마찰음이다. 마찰은 통증을 수반하는 것이니 물소리는 물이 아파하는 신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계곡을 징검징검 따라 내려가며 물소리를 계속 들었다. 물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모이고 또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그 신음은 합창하듯 커져서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듣는 감상이라고 할까. 아마도 코로나19를 겪는 저잣거리의 고충이 오버랩 되어서 일 것이다. 도랑은 묘지들과 아파트 군 사이로 내려와 시멘트 벽에 갇혀 좁혀지다가 도로 밑 터널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실개천이 도심의 지하에서 울부짖는 동안 그 위의 세상에서도 인간들이 신음하고, 운다. 길 위에서, 상가에서, 빌딩에서, 모임에서, 큰 집회에서, 광장에서 이야기하고, 떠들고, 합창하고, 함성을 내지르는 음성들은 크게 보면 물의 소리와 다르지 않다. 살기 위해 밀리고 부딪히며 뿜어내는 발성이고 몸부림들이다. 즐거워하는 탄성도 찌든 현실에서 빠져나오는 일종의 반사음일 게다. 물의 신음 소리는 인간의 한숨 소리였던 것이다.


송장길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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